소통 잘 하기 위한 3가지 비법… "쉬운 질문부터 던져라"

소통을 위한 첫 단계는 우선 질문이다. 질문을 잘해야 뒤의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오기 마련이다. 노구치 요시아키 대표에게 '소통을 잘하기 위한 질문 비법'을 물었더니, 자신의 책 《3의 법칙》에 나온 내용처럼 3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상대방이 대답하고 싶은 질문을 해야 합니다. 대답하기 싫은 질문을 아무리 던져 봐야 답이 나올 리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대답하기 쉬운 질문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쉬운 것부터 시작해야 대화가 활기를 띱니다. 반대로 처음부터 어려운 질문을 던지면 점점 대화가 힘들어집니다. 세 번째로 공통의 목표(Goal)를 만들 수 있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서로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뭔가가 없으면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컨설턴트의 질문력》이 히트를 치면서 언론 인터뷰가 몰려 들었는데, 질문을 제대로 못 하는 기자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취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질문인데 말이죠. 그래서 거꾸로 내가 위의 세 가지를 가르쳐 줬죠."

실제로 기업 현장의 소통 상황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는 비즈니스 대화에도 기본적인 세 가지 기술(skill)이 있다고 했다.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배려의 기술), 본질을 서로 이해·공유하면서 의미를 확실하게 전달하며(논리의 기술), 상대방의 마음에 호소하라(정보의 기술)는 것이다.

그는 "소통은 뭔가를 탐구·추구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도요타에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뭔가를 이야기할 때 '왜(Why)'라는 말을 다섯 번 이상 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진짜로 중요한 본질적 원인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일본어로는 진인(眞因)이라고 합니다. 소통은 질문과 답변을 통해 진인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조선일보 2010년 10월 9-10일 why c 3면)

한국국적 정대세 왜 북한대표로 뛸까?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100617070911957

출처 :  [미디어다음] 스포츠 
글쓴이 : 스포츠동아 원글보기
메모 :

법정 스님이 입적했다.

그의 고결한 삶에 대해서 바르게 인식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어떻게 매몰차게 자신의 굴 속으로 끌어들여서

감사치도 않고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려 했던가를 본다.

이렇게 어둠의 세력은 스스로 광명한 천사인체 한다.

 

이 모습이 얼마나 사람들의 찬사와 숭배를 받을 만 하게 하는가?

생과 사의 분깃점에서

생과 사의 구분은 없는 것이다고 담담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경지가 과연 무엇인가?

 

사람은 겸손하게 자신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해야 하는데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도를 자신의 굴안으로 닦아서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법정의 입적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그것으로 삶의 가치를 공유하게 될 것인가?

이 무서운 질곡의 끈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한 고결한 수행자의 죽음의 소식에

인간의 죄의 심대함과  그 결과의 치명적임을 거듭 확인하고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사람을 건져내랴? 고

고뇌한 사도의 고뇌를 떠올린다.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다.

누가 심판을 하시는가?

 

1박을 하고 아침에 전샘이 끓인 맑은 황태해장국으로 속을 시원하게 했다.

12시전에 마감을 해야하는데

김연아 선수의 피겨 스케이팅 게임이 있어서 10시부터 구경하기 시작해서

2시가 넘도록 볼 수 있었다.

아침에 잠깐 주변 산책로로 독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30분 정도

산책을 했다.

고양이가 강아지같이 따라오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고양이가 어떤 목표물을 발견하고서

달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역시 야생의 고양이와 다를 바 없이 빨랐다.

김연아 선수가 아사다 마오를 이기고 1등을 차지했을 때

우리들은 모두 함성과 함께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그 전의 가슴 졸임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였는지?

메달과 상관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날은 언제 올런지?

 

다음을 기약하고 아쉬움 속에서 3시가 다 되어 구암학교로 출발하게 되었다.

 

 

 

 

 

 

 

 

 

 

 

 

점심 식사후 구암초 주차장으로 오니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강석, 박형민, 그리고 전주희 권계현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출발 준비를 하였다.

장샘의 산타페와 나의 트라제 두대로 여정이 시작된다.

 

김은아 샘은 가이 어린이집 수료식에 참석하고 김치를 가져오느라

조금 늦었다. 원래는 오후 1시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생활소위 점심 식사가 거의 2시가 되어

끝났고, 김은아 샘이 다녀오니 3시가 넘게 되었다.

정수연샘은 일직이어서 일직이 끝난 후에 또 강재원이 어린이집 수료 발표회가 있어서

늦게 합류하기로 하였다.

88올림픽 대로를 거쳐서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IC -   3번 국도-98번 국도(양평 방향)- 8번 지방도(금사교회) 등을 타고

가는 길이었는데 3번 국도에서 98번 국도로 가는 길에 헷갈려서 20분 정도 지체를 하게 되었다.

98번 국도에서 8번 지방도를 타는데 산길을 고불고불 따라가다

도대체 어디가 팬션인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보통 팬션하면 집단촌을 생각했는데

이번에 여주 그린팬션같이 농가를 이용해서 띠엄띠엄 지어놓은 팬션을 경험하고

우리 나라에서도 팬션의 개념을 더 넓혀야했다.

 

조금 지루하게 이어지던 차안에서의 여행이 마무리 되면서

시골 논길을 가듯이 들어가서 눈앞에 나타난 건물 2채

팬션촌이 아니라서 일단은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모두에게 들었다.

순간 잘못 온 것 아니냐 하는 일단의 반응이었다.

질퍽한 시골길, 날씨가 풀려서 좋기는 했는데 역시 진창이 된다.

 

주차를 마치고 집안으로 들어섰는데 약간 생각이 달라진다.

방이 많았다. 화장실도 2개를 쓸 수 있고, 탁구장도 있었다.

거실은 커다란 플라스마 TV와 노래방 기기가 갖추어져 있었다.

주인 아줌마와 잠깐 대화를 나누었는데

일찍 주위 사람 3명과 함게 사 두었던 2500평의 논을 용지변경 허가를 얻어 10년전에 목조 건물을 지었다.

첫째 아들이 호주에서 유학한 목조건물 전문가라고 한다. 안면도의 팬션촌 을 설계해서 직접 짓기도 했다고 한다.

그동안 그냥 두었던 집이 관리가 잘 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워서 7년전에 인터넷에 올려놓아 팬션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근방에서 최초로 팬션을 싲가했다고 한다. 이제는 길길이 팬션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독고샘이야기로는 댓글이 가장 좋고 달린 팬션이라서 선택했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았다.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소리없이 뒤에서 우리들이 지내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해주셨다.

밥도 나누어주시고 오는날 점심 시간에는 해물 파전 3접시와 김치돼지찌개 한 접시를 먹음직 스럽게 해주셨다.

손이 크신 분이라고 모두 칭찬이 자자했다.

용진이와 가이 두 아이는 마음껏 놀 수 있었다. 강아지 한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어찌나 사람을 잘 따르는지 고양이는 거실에서 키우던 것이라고 살짝 달라붙는 맛이 도둑고양이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도회 사람들에게 인식을 새롭게 하였다.

다음날 오전에 아이들과 산책을 할 때, 고양이는 마치 개처럼 계속 따라오면서 반갑게 해주었다.

 

저녁 식사 준비, 모두가 한 몸같이, 장샘과 박샘의 장작불 고기 구이, 소시지 구이

마음 껏 식사와 주류를 먹고 마시고

노래방으로 한껏 노래 솜씨를 뽐낸다.

용진이의 우렁찬 목소리, 계속해도 실증을 내지 않는 끈기,

가이의 새침한 소리, 희원이네 집이 9시가 다 되어 도착한 후에는 희원이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재원 희원, 가이, 용진이 네 총사는 신나게 땀이 나도록 놀았다. 서로 다투기도 했지만

정샘, 전샘, 김샘이 음악과 출신 아닌가? 거기다 벨칸토 대장 박샘,

장샘의 그 호소력있는 가창, 독고샘의 발랄한 노래, 권샘의 산뜻한 노래, 나의 묵직한 노래

노래가 서로 어울려 한편의 음악회가 되었다.

 

이어서 <쳘교야 고마워> 시집 출간 기념 낭송회가 있었다.

김은아샘의 사회로, 정수연샘이 시평을 낭독하고, 이어서 박샘이 [샘] 시를 좋다고 읽기를 시작해서

한편씩 돌아가며 낭송을 하고 내가 때때로 중간에 끼어들어 해설도 하고 낭송도 하기를 거듭했다.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구동학년 샘들이 모여서 화제가 될 수 있고 서로의 공통 분모가 될 수 있는

자료가 되어주어서 말이다.

내친 김에 내년에는 53편의 시를 모아서 시집을 내자고 했다.

그리고 각자도 자기 연구 주제를 중심으로 글을 써서 모여서 멋진 교육자들의 MT요, 세미나가 되면 좋겠다고

꿈을 꾸어 본다.

 

 

 

 

 

 

 

 

 

 

 

 

 

 

 

 

 

2009년 서울교대 동문회 동작지부 모임을 기리며

2009. 12. 4 서울구암초등학교 교사 최대규

 

2009년 12월은 소리없이 다가와서 가려고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종플루의 압박이 일상생활에 가해지고 학교 생활과 사회 생활은 입에 마스크처럼 거름막이 쳐지고, 손세정제처럼 씻어도 씻어도 불안하기만 했다. 이렇게 다중이 한 공간에 모일 수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하고 새로운 일인지 모르겠다. 전염병의 위협이 한풀 꺽이며 우리 생활은 다시 기지개를 편다. 올해의 10대 뉴스 1위는 단연 신종플루가 되겠다.

 

이렇게 올해의 10대 뉴스 1위의 영향력을 뒤로 하고 서울교대 동문회 모임이 신남성초등학교에서 열리고 있는데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나는 대학교를 두번 다녔다. 서울교대는 두번째 대학이다. 첫번째 대학은 바로 신남성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총신대학교이다. 78학번 신학과로 입학했다. 79년 8월 13일에 육군으로 입대해서 1026사태를 고스란히 겪고 1212사태와 광주사태, 광주민주화 운동 그리고 전두환 군부의 압제를 군에서 고스란히 겪어냈다.

 

82년 3월에 제대한 후에 총신대 2학년으로 복학했다. 종교개혁자 칼빈을 모르시는 분이 있을 지 모르겠다. 총신대학교는 칼빈의 개혁사상을 바탕으로 "전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개혁신앙을 가르치는 학교였다. 나는 원래 목사가 되는 과정으로 신학과에서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도중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어서 총신대를 졸업하고 1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공부를 해서 서울교대에 입학하였다. 이렇게 총신대는 서울교대로 가는 도약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어머니 품 속과 같았던 총신대학교를 바라보는 이 신남성초등학교에서 서울교대 동문회를 하니까 서울교대의 졸업생으로서의 자부심이 더하게 된다. 교대 졸업 후 1992년에 성북구의 정덕초등학교에 초임발령을 받았고, 현재 구암초등학교는 4번째 학교이다. 나이가 51세이니까 달려온 세월이 달려갈 세월보다 더 많아지게 되었다.

 

우리 서울교대동문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이 있다. 교사로서의 삶, 18년을 교사로 지내오면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동료들과 함께 그리고 동료교사들이 어려워하는 것을 말없이 짊어지고 나아오려고 노력했다. 한 사람이 말없이 짐을 지고가면 10명이 안심하면서 교사로서의 보람찬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이 편해지려고 하면 그 짐을 열사람이 나누어져도 힘이 들게 된다. 검사들은 검사공동성을 중시해서 엄청나게 조직력을 발휘한다. 검사보다 교사들은 공동체성에 더하여 생명력이 넘쳐나야 한다. 획일적인 명령하달조직으로서가 아니라 교육의 공동성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실천공동체성을 말하는 것이다. 1명의 아이를 교육시키려해도 여러 명의 교사가 필요하다. 교사들이 한 맘으로 나아가야 교육은 비뚤어지지 않고 제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공동체성을 힘차게 추구해가야 한다. 물론 획일적인 공동체성이 아니라, 둘이 합해서 10이 되는 그런 공동체성을 발휘해 가야 한다. 서울교대 동문회의 생명력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2009년 서울교대 동문회 동작지부 모임을 기.hwp

 

동문들이 행정직과 경영자로서 승승장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하여 배타적이고 고압적인 높은 자리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이 교육공동체성을 뒷받침하고 한 알의 밀알같이 썩어져서60배, 100배의 결실을 하는 그런 순결한 봉사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진정 우리의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사람은 교단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가는 평범치 않은 평교사이다. 우리는 진심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서로를 붙잡아주며 이끌어주어야 한다. 가르치는 교사로서 소임을 다 할 수 있도록 연로해서 힘이 빠진 동문이 있다면 뒤에서 밀어주고, 아직 달려갈 길이 쟁쟁한 신입 동문이 있다면 앞에서 끌어주며 교사로서의 직임을 멋지게 그리고 활기차게 다 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야 한다.

 

서울교대 젊은이~ 거룩하여라. 비록 60을 넘어서 정년에 이르러도 뒤로 물러가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더욱 앞서나가는 서울교대 젊은이로서의 기상을 드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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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회에서(20090917).hwp

 

2009년 2학기 동문회 환영식에


2009학년도 2학기가 시작된지 벌써 한달이 다 되어갑니다.

2학기는 관성이 붙어서 1학기보다는 훨씬 시간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더욱이 신종플루라는 전염병이 온 국민의 우려 속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고,

학교 사회는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의 씨름을 하느라

수고의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구암초등학교에 부임한지 5년차, 마지막 해의 마지막 학기입니다.

현재 6학년 아이들이 2학년 때 이곳에 와서 후관의 3층에서만 5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거대학교의 과밀학급, 말썽쟁이 6학년들과 보이지 않는 씨름을 계속해 오면서

40대를 어떻게 지내왔는지 모르게 지나서 50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푸른 꿈을 품고 교대에 입학한 것이 1988년, 벌써 21년 전의 일입니다.

교원임용고사의 서릿발을 동맹휴학의 줄오줌으로 녹이면서 임용고시를 통과하여

성북구의 정덕초등학교에 1992년 세 명의 동기들과 함께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초등교사가 된지 이제 17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지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그 사이에 정권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까지 5번 바뀌었고,

아름다운 금수강산은 1,2번이 아니라 쉴 사이없이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여 왔습니다.

10년도 아니고, 5년도 아니고, 1년도 아니고, 매일 매일 강산이 바뀐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그러니 이 구암학교에서의 5년은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뀐 세월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변화의 와중에서 여러 동문 선후배들과의 교제가 있었고

여러 번의 동문 회식이 이런 저런 이름을 걸고 진행되었지만

얼굴 익히기에 급급하고 교사로서 그리고 동료로서의 깊은 교제는 쉽지가 않습니다.

거대학교라 하여 교직원이 100여명에 이르고 교사들만 해도 80명 정도가 되니

이름과 얼굴을 일치시키기도 어렵고, 선생님들의 이름을 기억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지요.

제가 처음 초임학교에 발령받았을 때 저의 10년 정도 선배가 되시는 선생님께서

이것 저것 필요한 때마다 불러서 가르쳐주시고 함께 고민해 주시던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17년을 이 터전에서 생활하고 자라오면서 선배님들에게 받은 여러 가지 혜택을

우리 후배들에게 나누어주고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할텐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여러 동문들과 함께 근무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동문회식 때면 기억나고 부르고 싶은 우리 대학교의 교가를 이 시간에도 부르고 싶습니다.

그 깊은 뜻을 다 실현하려면

1. 겨레의 새 희망을 북돋우며 가꾸어

   이 나라의 터전을 튼튼하게 쌓올려

   영원토록 길이 빛낼 우리의 앞날

   서울교대 젊은이 거룩하여라.

2. 새로운 지도자의 높은 덕을 닦아서

   앞서 나갈  국민을 슬기롭게 이끌어

   온 누리에 길이 빛낼 우리의 앞날

   서울교대 젊은이 거룩하여라.

이번에 새롭게 구암초등학교로 부임한 김지영 후배님을 환영하면서

구암초등학교에서 여러 선후배들과 함께

교육 동지로서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위하는 교육공동체로 가꾸어 가기를 희망하며 인사를 드립니다.


2009. 9. 17     서울교육대학교 27회 졸업생

              서울구암초등학교 교사 최대규


동문회에서(20090917).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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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장은 예식장이 아니었습니다.

식장은 연회장도 아니었습니다.

식장은 아이들이 몸구르던 작은 운동장이요.

식장은 아이들의 온갖 재롱을 펼쳐 보이는 무대였습니다.

 

 

 

 

 

 

세 분이 여섯 분으로 계심이 아름다웠습니다.

자신의 갈빗대를 치켜들어

살갑게 어루만지고

얼러주고 옆자리에 고요히 모셔두어

빛이 더 발하였습니다.

 

말에 말을 이어

서말 구슬이 한 오라기 실에 꿰어지니

그렇게 보배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하나

실없는 소리를 발하지 않고

모두 숨을 모두어 세 분의 영광을

손에 실어 강당이 울리게 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어인 인연이던가?

뿔뿔이 흩어졌더라면

초라하게 뒷모습을 보였을 것을

이렇게 셋이 하나로 엮어지니

강한 것과 약한 것

굵은 것과 얇은 것

긴 것과 짧은 것 

모두에게 복이 되었습니다.

 

소리

소리

흰색과 검정색의 어울림

아이들의 미소와 손손에 들린 장미 송이들이

한 아름씩 쌓여 앞산을 이루고 뒷산에 메아리가 되었습니다.

 

내가 내가 아니고

우리가 우리인 것을

숨죽이고 보려고 하였습니다.

이 21세기 시대에 19세기의 고상함과 수려함을

수놓으려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의 방적은 실이 되어

순면이 되고 우리의 가슴팍에 하얀 베옷이 됩니다.

 

눈먼 가시나는 울음을 때마다 울었습니다.

혼자서 가슴에 박힌 것들을 내몰아 내려고

그렇게 점점이 눈물을 심어대었습니다.

 

너가 너가 아니고

우리가 우리인 것을

가슴에 심어주려 함이었다고

말하렵니다.

 

그렇게 살갑게 얼굴을 내밀고

가슴을 쓸어

손잡아 주어 걸어갑시다.

누가 앞이고

뉘가 뒤이며

뉘가 머리고 뉘가 몸통이며 꼬리인지

가림함이

한 몸에 생기를 불어넣고

두 발로 걸어가 그대 품에 안길 때까지

그리합시다.

때아닌 산행 이야기가 나온 것은 체육부장과 관리자들간의 입담에서 시작되었다.

6학년말 업무에 바빠서 하루에 한 두가지 실수를 범하고 마는 이 시절에 산행을 한다니...

오늘은 산행의 가벼움을 멀리하고 후관 3층에서 아이들의 건강기록부를

배정된 중학교 별로 나누는데만 2가 넘었다.

다행히 오전 수업만 하니까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었지만

 

6학년 졸업장의 년도가 그만 오타가 나서 전량을 폐기하고

새롭게 인쇄를 해야할 판이다. 그런데 교장샘의 상장 용지가 딱 떨어진 것이고,

졸업식 예행 연습은 내일인데 이런 일이 자꾸 발생한다. 급하게 일들이 처리된다.

다시 상장 인쇄를 맡기고, 케이스 수정을 위한 판박이를 주문하고 기다린다.

 

건강기록부 분철 작업이 끝나고

아이들 졸업앨범CD 작업을 마무리한다. 끝까지 속을 썩이는 아이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만 감추려고 하는 아이들

끊임없이 주절이 주절이 잡담과 몸장난 속에서 갇혀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일년 동안의 마무리를 이렇게 해야 한다니, 정말 속이 터진다.

그래도 아이들의 양식을 믿고 목적지를 향해서 항해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졸업앨범을 나누어주고 개인 사진을 붙이는 작업을 3,4교시에 했다.

사고를 치는 아이는 항상 그런가 보다 또 작은 사고가 생겼다.

티칭 기법을 이용해서 (문제 상황을 포착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문제점과 그 문제를

해결해 가기 위한 방안, 그리고 그 해결 방안에 장해가 될 요소들을 찾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도록 하였다.) 생각이 좀더 안정되고 자신을 세워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학년 일을 진행하면서 이제는 중단없는 전진을 하게 된다.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체제가 받침하고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정직하게 그러나 포용력있게

사태를 파악하고 잔가지들을 치면서도 줄기를 상하지 않게 해야 한다.

 

하여튼 박샘의 도움으로 아이들 CD 앨범이 착착 마무리되고 있다 .어떤 작품이 나올 지 궁금하다.

내일도 조금 더 보완을 하고 CD를 굽도록 해야겠다. 3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했는데...

 

산행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 겠다.

관악산 산행은 못해도 서울대 버들골 산보를 해보자는 의욕을 가졌지만 결국은 산보도 해보지 못했다.

그냥 졸업CD앨범 마무리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다 보니, 4:40분이 되었고

컴퓨터 보조원 송샘의 차를 타고 이것 저것을 코치하면서 서울대 입구의 금수사에 도착했다.

무슨 중국집 같은 이름이지만 사실은 횟집이다. 전 직원의 회식을 준비하여 산행을 마친 직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6학년 샘들(장샘, 김샘, 권샘, 고샘, 그리고 나) 금수사로 들어가기 전에 근방의 야구공 치는 야구장에서

일반빠르기의 야구공 치기를 1000원어치씩 하였다. 500원에 17발, 처음에는 잘 맞지를 않았다. 점점 익숙해지면

조금씩 타구가 뻗어나갔다. 권샘의 의욕이 우리를 활기차게 했다.

 

약식의 회를 먹고 노래방을 즉석에서 벌였다. 동요 10편을 부르려고 했는데 그만 6곡 밖에 부르지 못했다.

본의 아니게 사회 아닌 사회를 보게 되었다. 자발적으로 한 일이고 즐거웠다. 왜 꼭 유행가만 불러야 하나?

하는 의문을 보기좋게 날려버린 노래방이었다. 그렇다 동요로서 분위기를 쇄신하고 전체를 참여하게 하는데

유익함이 있다. 모두들 즐겁게 참여하여 주었다.

 

끝나고 교과실 박샘, 배샘, 최샘, 정샘, 윤샘 그리고 6학년 장샘, 권샘, 정샘, 그리고 고샘, 정샘 이렇게 남아서 노래를

계속 불렀다. 그러나 금수사 2층에 손님들이 많이 왔고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마무리하고 나왔다.

나와서 다시 간이 야구장으로 가서 이번에는 박샘, 장샘, 나, 정샘, 윤샘, 정샘, 최샘 등이 17회 또는 34회를 타석에 섰다.

운동이 절로 되었다. 정샘은 아이들과 함께 하면 좋겠다고 하다가 조금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생각을 접었다.

2차로 호프집을 가기로 하였다. 정샘, 최샘, 정샘, 박샘, 장샘, 6명이 한참을 시간을 보냈다. 이오 호프집이었다.

장샘은 용산 참사 현장을 직접 새벽 2시에 다녀왔다면서 가슴에 맺힌 이야기를 꺼내려다 말문이 막힌 듯 하였다.

사태를 보닌 시각들이 ......우리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다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의 상황이 그저 우리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조류 안에서 함께 흘러가고 있는 것임을 생각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왠지 부조화를 보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에게 있는 긍정의 요소들을 놓지 않고 살려가며

부정의 요소를 치유하고 새롭게 세워가는 일을 해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교육 현장에 있는 전업 교사로서 오늘의 우리 현장의 아픔과 어려움을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쉬운 것만을 찾아간다면 우리 공동체는 어디로 가겠는가?

우리는 어려움과 아픔을 나의 것으로 삼아서 그것을 이겨나가고 나의 것으로 치유하고

살림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교사들에게 주어진 책무이다.

 

각기 교사들의 무한한 능력과 그 열정을 살려내어서

멋진 교육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동학년에 갇혀 있어서도 안되고

더우기 교실에 주저 앉아 있어서만은 안된다. 학교 공동체의 일에 우선 순위를 정하고 먼저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가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우리 공동체를 세워가야 한다. 저절로 세워져 가는 것이 아니다. 무임승차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그것을 누군가는 짐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3차 노래방으로까지 이어지는 열기

독샘을 위로하기 위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장샘이 그동안의 동고동락을 접고 새길을 찾아가야 하는 이 싯점에서

어디까지 저들의 마음과 함께 하며 진정한 우정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19, 20일의 대부도 졸업여행을 앞두고 그렇게 한 날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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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어요.
이런 말이 생각났는데 누가 한 말인지는 기억이 없지만...
이왕 할 것이면 어려운 일을 찾아서 해라.
쉬운 일은 지나가면 끝이지만 어려운 일은
그 경험이 무형의 재산이 된다.
올해도 그런 생각으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올해는 무엇보다 가정의 기초를 튼튼히 세워나가고
아이도 가지도록 하세요.
좋은 집을 지으려면 기초 공사에 공사 기간의 1/2을
쏟아야 한다고 합니다.
6개월 공사를 한다면 3개월은 기초만 파고 다져야 한다는
거예요. 가정같이 중요한 건물은 정말 기초가 튼튼해야 하겠어요. 
감사 ^^ 필요한 것 또 부탁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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