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있을까?

아이들은 서로 못난 부분을 보고 놀린다.

자기는 그런 부분이 없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못난 부분이 없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

 

모두가 못난 부분이 있다.

장애인이다.

모두가 장애인이다.

정상인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말의 오용이 심하다.

 

신체적 장애를 따지고 보더라도

안경쓴 사람도 장애인이다.

나도 이제 장애인이 되었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아픈 곳들이 많다.

그러니 장애인이 아닐 수 없다.

 

모두가 자기를 놀린다.

남을 놀리는 것은 곧 자기를 놀리는 것이다.

남의 잘못된 부분을 가지고 놀리는 것은 자기도 놀림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의 잘못된 점을 인식하게 되면

다른 사람을 놀리지 않고 존중하게 될 텐데

그러면 다른 사람의 차이를 존중하고

오히려 나와 다른 점을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나의 적은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을텐데

 

나의 것이 다른 사람과 다르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참으로 좋은데

그 좋은 것을 원수 맺는 일에 쓴다.

남을 괴롭히는 데 쓴다

나만 장애인이 아니라고

아무리 자기 자랑을 해도

장애인이라는 것을 숨길 수 없다.

그가 그것을 숨긴다면

그야말로 그가 진짜 장애인이다. 아주 거짓 정상인이다.

사이비 정상인이다. 위선자이다.

                           아! 꽃눈이다.

 

                                                             송천

 

4월

만우절이 이틀이나 지났는데

"눈이 내려요."

창밖을 쳐다보며

작은 함성을 지른다.

 

왠 눈이

 

멘마른 대지를 적셔줄 봄비가 푸근히 내리는데

약간 쌀쌀하지만 그래도 참을만 하게 풍성한 비가 내리는데

땅엔 질펀하게 물이 고이고

아이들은 새앙쥐처럼 교실에만 웅크리고 있는데

 

하늘엔 꽃눈이 새하얗게 빗발친다.

검정 사포 위에 점점이 까득 연분홍빛 벗꽃을 만잎이나 흩날리게 찍는 것처럼

하늘 가득 반딧불이가 반짝이는 것처럼

꽃눈이 내린다.

 

땅위에 닿자마자 산화하는 꽃눈

하늘 가득 꽃눈이다.

 

와! 꽃눈이다.

 

질펀한 땅에 내려앉는

사뿐사뿐 꽃눈이다.

꽃눈이다.

 

아! 꽃눈이다.

불편한 진동

                                                      송천 최대규

 

어찌 이리도 몸서리치게 하는가!

 

깊은 밤

곤한 잠을 깨우는

불편한 진동

 

그 성대의 떨림이

얼마나 아플텐데

쉬지 않고 계속 짖어댄다.

 

모두가 잠들어

피곤을 녹이고

새힘을 저장하는 시간에

뭔 아픔이 있어

저리도 고함쳐 대는가?

 

경찰을 부를까?

맞고함을 지를까?

고민의 여유 사이에도

불편한 진동은 멈출줄 모른다.

 

고막을 깨우는 울부짖음에

영혼이 떨리고 만다.

 

무슨 아픔이기에

저리도 불편하게

떨리고 있나?

 

곤한 잠에서

억지로 깨어

그 소리를 들으려 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모두가 잠든

이 깊은 밤에

이제는 쥐죽은 듯 잠잠해진

그러나

내 영혼을 깨워

잠들지 못하게 하는

불편한 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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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다. 옆집의 개가 울부짖는다. 피곤한 몸이 잠들어 있는데 그 소리에 깨고 말았다.

몇달 전 이 좁은 구석에서 키우던 밍이의 울부짖음이 오버랩되면서

저 개가 무슨 불편함이 있어서 저리도 짖어대는지 동정심이 생겼다.

저 소리를 듣는 모든 사람들이 잠을 자지 못할텐데

모두가 한 마디씩 욕을 해 댈텐데

그래도 쉬지 않고 긴 시간을 짖어댄다.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그러나 나의 가슴에 전해지는 진동이 있었다.

저렇게 즘승 개가 울부짖음에 나의 영혼이 깨어서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채게 한다.

그 즘승 개의 고통이 어디서부터 왔는가?

어찌 해결되겠는가?

 

불편한 마음, 피곤한 몸을 이끌어 책상머리에 앉게 하며 한편의 시를 쓰게 만든다.

 

'무지개 떡'과 시의 발견 / 정호승


신문에서 네모난 수박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본질적인 개념이 부서진 것에 전 놀랐습니다. 수박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네모나게 만들어지기 위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첫번째것을, 먼저 말씀드리면 그냥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것을 초월하는 데서부터 시가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예를 들어서 "비가 오고 있다"라는 것은 아주 산문적인 생각이고 "창 밖에 비가 울면서 오고 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거기서부터 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박이 둥글다는 것을 지키지 못하고 네모난 것이 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수박이라는 사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겁니다.
실제로 수박의 씨를 심고 네모난 금형, 일종의 플라스틱통 속에서 자랄 수밖에 없도록 했습니다. 처음에는 수박의 성장력이 너무 세어서 그 틀을 파괴시켜 버렸습니다. 햇빛도 스며들고 바람도 통하고 흙과도 연결되도록 그 틀을 만드는 데 5년이 걸렸다고 신문에 난 것을 봤습니다.
수박이 둥글게 자라다가 어느 시점에는 틀에 갇혀서 네모집니다. 그럴 때 수박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러한 마음을 생각하는 데서부터 시는 시작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문을 보면서 일상 속에서 네모난 수박을 시의 어떤 한 세계로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제 처가 무지개떡을 사 가지고 왔습니다. 나를 위해서 당신이 무지개떡을 사와줬고 그리고 또 내가 맛있게 먹어 주었으니까 참 당신한테 고맙고 오늘 저녁은 좋은 날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제가 무지개떡을 먹으면서 "무지개를 먹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무지개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무지개떡을 먹으면서 무지개를 먹는다. 또 무지개떡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무지개떡 속에 들어있는 무지개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우리는 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런 눈을 다 갖고 있는데 항상 우리가 무심하게 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눈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지개떡이라는 짧은 시를 써봤습니다.

엄마가 사 오신 무지개떡을 먹는다

이렇게 첫행을 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집사람이 사 온 무지개떡을 먹는다. 또는 내 처가 사 온 무지개떡을 먹는다' 이러면 시가 안 되겠지요 그렇죠?
제가 어릴 때 어머니가 신천시장에서 무지개떡을 사오셨잖아요, 저를 위해서. 그 떡으로 제가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엄마가 사 오신 무지개 떡을 먹는다
떡은 먹고 무지개는 남겨 놓았다

그렇죠. 우리가 떡 속에 있는 무지개는 남겨 놓으니까

엄마가 사 오신 무지개 떡을 먹는다
떡은 먹고 무지개는 남겨 놓았다

북한산에 무지개가 걸렸다

이렇게 짧은 시를 한 번 써 봤어요. 그리고 그 시를 쓰고나니까 굉장히 기뻐요. "맛있다. 아! 좋다"로 끝나는 것보다는 저는 시를 쓰는 사람이고 무지개떡을 통해서 시를 발견하고 그렇게 쓸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삶에 있어서 커다란 기쁨이다는 것입니다

출처 : 백미문학
글쓴이 : 맑은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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