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완 수석교사의 글을 읽고
그 과정에서 생각나는 것들을 번호순으로 적어본다.
1. 표지에서
수업나눔, 수업대화... 수업의 맛을 함께 하다.
수업, 너 참 잘 만났다.
학생 중심의/ 학생이 주인되는/ 교사와 학생 모두가 살아나는 수업대화 등의 제목이 생각이 났다.

2. 도입부분에서
-현실의 수업연구의 모습이 20년전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점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왜 그럴까? 그런 것들을 어떻게 의미있게 기술하면 좋을까도 고민이 되었다. 그냥 객관적 서술이 아니라 조금 더 변화된 모습을 긍정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너무 그렇게 비교하고 서술하는 것들이 많다는(?) 선입견이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그렇게 읽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7쪽 가르침을 개선하면 배움이 자동적으로 향상될 것이란 전제하에서,
배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삶이란?->인간이란? -> 성찰의 심화->교육의 성숙(가르침-배움)-> 공동체적 작용과 개인의 삶의 변화

8쪽 각개 학교의 특수성과 일반화의 문제
18쪽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19쪽 아이눈으로 수업 보기의 수업협의 절차 같은 경우는 이미지화해서 한눈에 들어오도록 제시하면 좋겠다.
45쪽
글 전체에서 각주로 처리한 부분들이 많았는데,
그런 부분들은 책으로 펴낼 때는 논문이 아니니, 글 속의 본문으로 되도록이면 녹여내서 글을 읽기가 편하게 해주시면 좋겠다. 그러면 글의 쪽수도 더 채워질 수 있는 점이 좋겠다.
그리고 학문적인 글 전개보다는 독자의 읽기를 중심으로 한 독자 중심의 글이 되도록 글을 전개해 주시면 좋겠다.
9년간의 실행연구를 글로 풀어주시고 단계별로, 마음에 품고있던 것들을 하나씩 끄집어내면서 연결적으로 글을 제시하는 것이 참 좋았다.
계속 끌려가듯이 호기심을 갖고 읽을 수 있었고 재미도 있었다.
50쪽 마찬가지로 도표를 더 간략하게 제시하고 필요한 것만 보여지게 하면 좋겠다.(복사본에 쓴 메모 참고)

112쪽
근본적으로 각각 교사들의 생활과 삶 자체가 수석샘과 마찬가지로 수업에 대한 열정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교육에 대한 헌신으로 연구실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실 그런 사람이 교사이다.
자기 교육- 모든 사람들이 자기 교육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특히 교사는 교육을 업으로 하면서 이 자기 교육에 대해서 날카롭게 반성적으로 연구하고 실행하면서 교육의 본을 보여야 하는 존재이다.
그길로 들어서도록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 등에서 안내해야 하고 학교가 전문가학습공동체로서 그 조직 목표와 문화와 삶이 진정으로 교육기관이 되어야 한다. 말단 행정조직의 한 부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런 자부심을 확보하고 실현하는 공동체로서 자리를 잡고 더 심화시키는 실력과 역량과 비전과 내실이 있는 그런 공동체 기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이게 안 될까?
교사라면, 교육기관이라면 교육공동체라면 마땅히 그리해야 하는데? 왜 안될까? 어떻게 하여야 할까?
(교회를 생각하게 된다. 교회가 진정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왜 그렇지? 다른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인간의 죄성에 대한 바른 인식이 없이는 이 문제에 대한 바른 이해가 불가능하게 되고 엉뚱한 방향으로 보게 되고 대책을 내어 놓게되므로 어긋난 길을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비록 도식적이긴 하지만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큰 프레임 안에서 세밀한 상호작용이나 현상에 대한 분석과 대책 마련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현상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부정적으로만 볼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선하게 창조하시고 역사를 통해서 마침내 그 완성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은 교묘하고 그 깊이를 다 파고들기 힘들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새롭게 거듭나서 거룩한 공동체로서 완성에 이르게 하실 것을 믿음으로 현재를 성신을 의지하여 새사람으로 부단히 살아가고 날마다 새롭게 나아가기를 추구해 나갈 수 있다. 다른 사람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살피고 오히려 이웃의 짐을 내가 지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나아가게 하신다. 그 안에서 나의 선한 추구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영향력을 발휘하며 공동체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작은 섬김을 이루어간다.)

119쪽
IV. 수업 나눔 실행 과정의 구조...
여기서 전개하려고 하는 글이 기대가 된다.
앞의 실행연구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것의 의미를 자신과 공동체안에서 성찰하며 심화해서 끄집어낼 수 있는가가 결국 전문가로서 일반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글 내용이 되겠다.
너무 어렵게 제시하기 보다는 잠잠히 앞에서 제시한 것과 같이 본인이 생각하게 되는 바들을 풀어가면 되겠다.
너무 이론가들에게 기대지 말고 그런 것은 그냥 글 속에 녹여내고 자신의 말을 뱉어내면 되겠다.
충분히 이미 실행 연구에서 그 재료들이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너무 길게 설명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냥 담담히 자신의 생각을 풀어가면(의미있는 바들을 끄집어 내서 제시하고 ) 공감하는 것은 독자들의 독해력과 책임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

너무 특별한 것을 제시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리고 이미 개념화되어 있는 그런 용어들을 도용해서 제시하려고 하기 보다는 이병완 샘 자신의 말과 언어로 풀어내면 좋겠다. 그래야 이 책이 더욱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일단 부담감을 버리면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글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만한 역량과 고민이 이미 축적되어 있으니 그냥 풀어서 줄줄 쓰시면 되겠다.

129쪽 IV 수업대화 실행의 교육학적 함의...
너무 큰 주제이다.
그것은 박사학위 논문으로 마무리 하시고,
여기서 책으로 펴내실 때는 본인이 생각하는 교육인류학이라고 할까? 자신이 깨달은 바를 잠잠히 써내려가면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전문적인 용어와 내용들이 포함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병완 샘이 마음으로 해석하고 자기 것으로 만든 그런 단어와 글로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쓰시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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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완 선생님의 논문 글을 읽고 있다.
그 노력의 과정을 읽으면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목표를 가지고 그 과정을 체계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멀리 내다보고, 한 걸음에 다 디디려 하지 않고
현실의 문제점들을 정확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참으로 멋진 일이다.
자기가 하려고 하는 것, 보려고 하는 것, 꿈꾸는 것을 위해
계속 자기 학습을 하면서 동료 교사들과 함께
그들을 이끌기도 하고 그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하면서 한걸음 한 걸음 하나 하나씩 전개해나갔다.

부럽기도 하다.
나는 대충 대충 그냥 한 해 한 해 넘어가기가 일쑤였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하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개인적인 성격 때문일까?
아니면 체제의 문제일까?
개인적인 문제와 체제의 문제가 공존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세세하게 끌고 갈 수 있는 실력을 구비하지 못했다.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고, 그런 연수를 계속 받으면서도 당장 써먹을 것만 입에 넣었지, 그 과정 전체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하나 하나 시도를 하면서 동료교사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학교 전체의 협조를 구하는 시도를 해보지 못했다.
꼼꼼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부족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신감이 없었던 점도 있다. 자신이 부족한 것을 함께 나누면서 협조를 구하고 서로 개선해 가면 되었을텐데
이상은 높을지 모르나 현실에 발을 디디고 하나하나 개선해 나갈 의지와 실력이 모자랐고, 그런 방향으로 계속 추구하지도 못했다.
수석교사의 역할에 대한 인식과 지향도 많이 모자랐다.
그냥 개인적 명예로만 생각하고 한 점이 많다.
명예의식에 사로잡혀서 갈등 구조를 만든 점이 있다.
오히려 그런 것들 속에서 자신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 본질을 붙잡고 관련되는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실행하는 일에 목표와 실질을 두고 나아갔다면 더 의미있는 연구와 실행으로 교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우리 학교를 연구공동체로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걸음을 떼어갈 수있었을 것 같다.
이병완 선생님의 실천과 그 결과의 보고가 의미있는 이유이다.
이것은 꼭 수석교사만이 아니라 연구 부서를 담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개인 교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교사 공동체 전체가 이런 비전과 방향을 가지고 함께 추구해 나간다면 더욱더 멋진 교육공동체, 그리고 실질적인 교육역량을 향상시키는 전문가 집단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교육을 실행하는 섬김의 기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교육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부작용과 역작용을 과감히 절제하고 절단하면서 새로운 생명의 싹들이 돋아나게 하고 전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교육, 살리는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 감사하고 부럽고 또 부끄럽기도 하고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
결국 이런 긴 이야기를 읽는 것은 실천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실천을 잘 하기 위해서는 메뉴얼이 꼭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간략하게 실제에 적용할 수 있는 메뉴얼
이런 점에서,,, 이 긴 내용을 가장 최적화된 상태로 적용할 수 있는 메뉴얼을 뒷부분에 최종적으로 정리해서 제시하면 좋겠다.
그 내용도 상당한 것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앞에 간략한 개용, 전개도를 이미지와 함께 제시하고,
- 각 부분에 대한 간략한, 최적화된 상태의 자료와 예시 문들, 글들을 함께 제시하여서 10쪽 내외로 항상 손에 들고 적용하는 데 사용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

 

교사의 소진

~4차 산업혁명과 소진의 문제를 어떻게 연결할까

4차가 아니라 n 차 산혁에 살아갈 아이들인데

거대한 의문점을 마중해야할 교사로서

인성교육을 가정을 떠나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할 때가 되었다

 

생활지도 돌봄 인성지도를 잘 할 수 있어야겠다

 

현재 교사의 소진에 중점

4차 산혁 자체를 모르겠다

누구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여러 정책들로 내려오면

또 하나의 업무로 처리되어 소진의 원인이 또 하나로 되지 않을까

평생학습능력이 교사에게 필요하다

교사교육도 이런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시대가 바뀌나 지적 장애는 남고 특수교사에게 더 과제가 될 것

주체성을 가지고 교육을 해나갈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소진이라는 용어를 다른 말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행복증진 이라는 용어, 치유센터보다는

부모교육 확인 전제 조건 ~국가공교육이라는 점에서

 

부모로서 수많은 선생님들을 생각하게 됨

이렇게 교사의 소진을 해결할 방법은 부모교육

부모교육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이고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교사들이 소진되지 않고 행복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특수교육

특수교사의 소진 문제가 정책적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학교폭력인가 아이의 문제 행동인가?

특수교사의 재량권~

 

밝은 점 찾기 전략

주인으로서

학교에서도 고용인의 입장에 있으면 다르다

학교의 주인이라면~

 

행정업무 때문에 급여가 높은 것이다

일본 교사가 힘들다고 하는 사람을 백화점 점원으로 6개월 근무하고 오게 한다

 

 

 

WALKING.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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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MB

137쪽

오히려 문법을 가르칠 때에는, 학생들이 책임 있게 경청하고 창의적으로 의사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는

먼저 학생들이 문법을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를 갖도록 하기 위해

학생들의 언어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정확하고 구체적인 문법개념을 가르침으로써,

바로 하나님이 언어의 바탕에 깔린 구조적 법칙과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법칙의 창조주이심을 지적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솔직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의사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정확한 문법과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이런 의사 소통에 얼마나 공헌하는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은 인격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받는다.

그들은 교실 안팎에서 배운 것을,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풍성하게 하는 말과 글의 의사 소통에 적용한다.

우리는 문법을 가르쳐서 학생들이 그것을 민감하고 책임 있게 경험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로, 기후라는 주제를 생각해 보자.

<대부분은>

- 지식 탐구

<재개념주의자들은-구성주의자들>

- 감정과 생활에 영향을 줄 때 반응하고, '생활 세계'에서 다양한 의미 창출하라.

 

<성경적 지식관에서>

- 기후의 물리적 측면,,,과학 교과서보다는 훨씬 더 넓은 맥락에서 가르친다.

- 기후란 폐쇄되고 자율적이며 인과율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세계의 일부분이 아니라,

   창조된 실재의 모든 양상에서 기능하는 것임을 강조할 것...

- 기후는 우리의 환경에 영향을 미치며 따라서 식물과 동물, 인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 기후는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런 감정은 물리적 요소에 단지 주관적으로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기후 자체에 들어 있는 주요한 부분이다. (시적 표현,,, 음악적 표현, 예술적 표현  등등)

- 기후는 학생들의 일상적인 계획과 각 계절의 생활 뿐만 아니라, 운송, 인류의 생존, 농업과 관련해서도

   고려되어야 한다.

* 참된 지식은 물리적 실재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런 실재를 인격적으로 의미 있고 적절한 맥락 안에서 가르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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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 운영을 학교의 핵심 사업에 두고 진행하자는 캠페인(?)이 벌어진지도

꽤 되었다.

 

이제는 교육과정 운영이 중심이 되지 않은 학교는 학교 성과급에서 B밖에 받을 수 없다.

S, A는 문서상 교육과정 운영이 학교의 중심이 된 학교에 우선적으로 지급될 것이다.

 

하지만 교육과정이 한시도 제자리를 지키지 않고 계속해서 진화해 가는 바람에

교육과정을 쫓아가서 헉헉 거리며 자기 것으로 만들기도 바쁜 실정이다.

 

이제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것이 되었다.

교육과정학과 거기에 부속된 여러 교육학, 교과교육학의 발전은 눈부시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교육과정 운영의 정상화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여기서는 세 가지 정도만 이야기를 하고 싶다.

 

 

1. 교육은 -가 아니라 +의 과업이다.

 

교육은 분명 무에서 유로 나아가는 성장에 관련된 아이템이다.

그런데 교육이 성장이 아니라  정죄의 일이 되고 있다.

이것은 비교의 문제, 경쟁의 관행 때문이다. 성장의 목표를 세워놓고 거기에 도달해야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교육 시스템이 되는 것이니까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교육은 잘못된

교육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도달하지 못한 개개 학생들은 그만큼 - 점수를 받아 정죄를 받게 된다.

그래서 평가가 무섭고 평가 후에 따르는 처벌이 무섭다. 옛날에는 무식하게도 틀린 갯수만큼 매를 맞기도 했다.

나는 40점 짜리, 나는 50점 짜리, 나는 90점 짜리, 100점 짜리 외에는 모두 - 점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40점을 받았다면 +40점을 받은 만큼 성장한 것이다. 그런데도 - 60점이 부각된다.

- 점수가 아니라 + 점수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2. 교사동일성이다.

 

동일성이라는 말에서 앞서 가는 집단이 있다. 검사들이다. 검사는 어떤 검사든지 동일체가 되어서

움직여야 한다. 법을 가지고 심판의 선두에 서서 정죄를 하는데 천차만별이 된다면

공정의 칼은 무뎌지고 말 것이다.

 

교사들은  개별이 아니다. 1학년 없는 2학년 없고, 2학년 없이 3학년이 있을 수 없다.

유치원 과정이 교육과정으로 들어왔으니 유치원 없는 초등학교 없고, 초등학교 없는 중학교는 없다.

교사들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근무하므로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들이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만들어놓으면 그 위에서 2학년, 3학년,...

6학년 까지의 교육이 이어지는 것이다.

만약 중간에 한 학년이라도 결손이 생기면 그 만큼 초등학교 교육은 결손이 되는 것이다.

개별 학생에게는 초등학교 교육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게 된다.

 

이처럼 각 학년 교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교육이 중요하고 그것은 전체로 연결되어 있다.

자기가 잘해야 하지만, 자기만 잘해서는 안된다. 모두가 잘해야 비로소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 교사들의 업무 성취도를 평가할 때, 이 점을 생각하지 않고 1년을 단위로 평가하는 것은

교육의 본질을 가리고 눈뜬 장님이 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면 사회 전체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

결국 교육은 사회 전체 시스템의 문제와 직접적으로든지 간접적으로든지 연결되어 생존하는 생물이다.

교육이 별도로 돌아갈 수가 없다. 가정, 사회, 학교 이 세 주체의 삼위일체적인 노력이 있어야

교육은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감당하고 나갈 수 있다.

 

이런 시각을 가지고 초등학교의 교육과정을 생각해보자.

 

초등학교 각 학년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은 동일체이다. 사회의 문화를 담보하고 그것을 교육과정이라는

틀 속에서 자라나는 학생들을 사회화시키는 것이다. 개체에서 사회적 존재로 만들어가는 교육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사들은 이런 공동체성을 인식하고 자신이 그런 존재로서 자각하고 스스로 제 역할을 분임해야 한다.

공동체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교사는 공동체를 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공동체에 -가 될 수 있다.

물론 이 공동체성은 전체주의적인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공동체

살아움직이는 생물로서의 공동체를 말한다. 공동체의 성숙도에 따라서 그 공동체에 대한 느낌과 인식, 그리고 참여가

다르지 않는가? 그러나 분명히 공동체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나아가면 교사로서는 제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교사가 이런 공동체성을 인식한다고 할 때 자신의 생각과 교직 생활에서 어떻게 준비하고 실행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성숙해 가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교사의 성숙 만큼 우리 교육은 성숙하고, 결과적으로 학생과 사회가

성숙한 공동체가 되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영향을 주고 받게 될 것이다.

 

3. 학습총량제

 

교육과정학과 교과교육학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수많은 이론을 포섭하여 멋진 교육과정이

때마다 주기적으로 바뀌고 새옷을 입는다.

그런데 박사님들이 만들어가는 이 교육과정학의 모든 요소가 하나의 체제로서 담겨져야 하는 학교 현장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되고 만다.

각 교과 이기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학습총량이 과부하가 되어서 재미있고 여유있게

즐기며 성장하고 성숙해가기 보다는 헉헉대며 목표에 도달하려고 기를 쓰기에 바쁘고 정신없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초등학교 학생이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까지의 십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기본적으로 학습해야 할(영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보통 시민교육을 위해서) 학습의 총량을 계산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100을 총량으로 할 때, 유치원은 20, 초등학교는 40, 중학교 20, 고등학교 20 이렇게 적정량을 분배하고

그 다음에 각 교육단계별로 초등학교의 경우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그 총량을 다시 배분하고

거기서 교과와 창의적체험활동을 또다시 배분하는 식으로 한 다음에(단순히 시간 안배가 아니라)

교육내용이 적정하게 배분되어서 학습 총량을 넘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

교육과정학 박사님들이 많이 계시니, 또 이제는 교육과정을 책임맡고 있는 별도의 기관이 있으니 이 기관이

이것을 책임있게 연구하여 구체안을 가지고 교육과정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학생들에게 학습 총량이 각 단계의 학생으로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요즘의 모토로 말하면 "꿈과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행복 교육"의 주체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량이 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 총량을 기준으로 해서 질적인 요소가 확보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총량 개념이 없이 그냥 쏟아부어놓으니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만족감에 도달하지 못하고

항상 - 개념, 충만이 아니라 부족감, 상실감, 열등감에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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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년이면 강산이 자꾸 변한다.

이렇게 변화의 열류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가르치고

세우는 것이 교육이다.

변화 속에서 중심을 잡고 나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교육의 중요한 사명이다.

그리고 그런 중심 속에서

변화에 대응하고 변화를 이끌어가는 것

하찮은 것에서 심대한 것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교육이다.

 

강물 속에서 금을 캐내듯이 하는 것이다.

교실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십니까?

번역한 지가 10년이 넘는 책이 되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에 적용한 예들이 나와야 한다.

 

고개를 넘기가 어렵지만

고개를 넘으면 내리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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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take individuals or small groups apart to meet particular needs.

You may want to give individual students  or small groups several options

to further reinforce concepts, to examine some specific part of the topic

under consideration, or to expand what has already been learned.

( 그리고나서 개인들 혹은 작은 모둠들로 나누어서 구체적인 필요들을 충족하게 하라.

교사는 개별학생들이나 작은 모둠들에게 몇 가지 선택 과제를 줄 수 있다.

그것으로 개념들을 강화하고, 공부 중인 주제의 어떤 특정한 부분을 검토하게 할 수 있다.

또는 이미 배운 것들을 확산시킬 수 있다.)

 

In this way, you see your pupils as having special gifts which they use in the context

of a community of learners. This type of personalized learning calls for

a variety of classroom groupings that suit particular needs.

(이런 방식으로, 교사는 학생들이 

[배움 공동체 - 학습자의 공동체라는 말보다는 '배움 공동체'라는 말이 더 의미가 깊다] 상황에서

사용하는 특별한 재능들을 가진 것으로 이해한다.

이런 식의 [인격적 배움]이 이루어지려면 학급 모둠을 다양하게 구체적인 필요들에 맞도록 구성해야 한다. 

 

One way you may maintain personal contact and recognize the needs of children is through

holding individual conferences. Their purpose is to assess students' progress, say,

in reading or in a unit in order to guide them in further learning. In a reading conference,

teachers discuss the content, ask them to read orally from a part they enjoyed, make notes,

and share with them which skills need to be learned or reinforced.

Keep such conferences short (five or six minutes) and ensure that the rest of the class works quietly.

 

(교사가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고 학생들의 필요를 알아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개인별 협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협의 시간를 갖는 것은 학생들의 진보 정도를 평가하고, 읽기나 어떤 단원에서 그 다음 배움으로 안내하기 위해서이다.

읽기 협의를 통해, 교사는 내용을 함께 토의하고, 학생들에게 재미있었던 어떤 부분을 소리내어 읽어보라고 하며,

요점을 정리하고, 배우고 익혀야할 어떤 기능들을 함께 나눈다.

그런 협의들은 짧게(5, 6분 정도) 하고 그 동안 나머지 학생들은 조용히 공부하게 한다.)

 

One final controversial topic to be addressed in this section. Most research evidence says that streaming

or tracking does not benefit high school students, and that it is particularly harmful

for the academic and social develpment of students in lower-ability streams.

Teachers lower their expectations, do not teach as well, and have more discipline problems with such classes.

Academically-weak students perform better in small high schools where streaming is not possible

because of size. Moerover, most good students do not advance appreciably more when grouped by themselves.

Streaming also breaks community and creates antagonism in schools.

(학습의 구조화에서 마지막 논쟁거리 하나를 이야기해보자. 대부분의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능력별 혹은 적성별 학급 편성은 고등학생에게 유익하지 않다.

그리고 열등반 학생들의 학업과 사회성 발달에 특히 해롭다.

교사들이 기대 수준을 낮추고, 제대로 가르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학급은 훈육 문제가 더 생긴다.

학구적으로 약한 학생들은 학교 규모가 작아서 능력별 학급 편성이 불가능한 소규모 고등학교에서 잘 지낸다.  

게다가 대부분의 우수한 학생들은 그들끼리만 편성된다고 해서 향상이 눈에 띄게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능력별 학급 편성은 또한 공동체를 파괴하고 학교내에 적대감을 조성한다.

124쪽

그러면 성경적으로 볼 때 인격화된 학습([인격적인 배움] 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은 무엇인가?

What is a Biblical view of personalized learning?

 

1. [인격적인 배움]은 교사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하고,

   학생들이 [자기 인격을 구성하는 능력들]을 발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학습이다.

(First, personlized learning means that teachers treat students with care and concern,

and allow them to exercise the abilities that are part of their personhood. 

 

2. [인격적인 배움]은 가능한 한, 학급의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과제와 방법을 포함하도록 조직된다.

(Secondly, the learning is structured to involve tasks and methods that,  as much as possible,

meet the needs of all persons in a classroom.)

 

3. 학습자는  적절한 때 자신들의 학습에 대해 선택하고, 그대로 실행하며, 자신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격려받는다.

(Thirdly, learners are encouraged, when appropriate, to make choices about their learning, act on them,

and bear a measure of responsibility for their own learning decisions.)

 

125쪽 (원서 80,81쪽)

학습[배움](학습보다는 [배움]이라는 말이 더 좋겠다. learn 배우다 에 ~ing이 붙은 명사형이므로 [배움]이 좋겠다.

요즘 [배움]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는 하지만 유행어를 따라가기 위해서가 아니다)이

인격화되려면('인격화된다'는 말이 너무 어렵고 추상적이다. '-개인적으로-의미있게 되려면' 이라는 말이 더 좋겠다.

여기서 '개인적으로'라는 말을 괄호쳤다고 생각하고 생략하고 그냥 '의미있게 되려면' 이라고 사용하면 어떨까?

'배움이 의미있게 되려면' '배움이 개인에게 의미있게 되려면' '배움이 살아있는 것이 되려면' '배움이 자신의 것이 되려면' )

'배움이 자신의 것이 되려면'(if you want learning to be personlaized)

 

'배움이 학생의 것이 되기를 원한다면' 기본 개념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강화하거나

혹은 전체 그룹에 가장 적합한 방법들을 사용하여 정보를 제공하라.

그리고 학생들의 반응에 따라 가르침을 맞추어가라. 

(if you want learning to be personalized, discuss and reinforce basic concepts

or present information using methods that best suit the whole group, altering your teaching

on the basis of student response.)

학습을 구조화한다.

학습 - 배우고 익히는 것, 학생의 활동이다.

교수에 대해서 대응하는 학습...

 

어떻게 학습을 구조화하겠는가?

학습을 어떤 그릇에 담게한다?

 

학생의 활동이 어떤 그릇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겠는가?

큰 그릇과 작은 그릇이 있겠다.

 

한 개인의 활동이 있겠고, 학급 전체의 활동이 있겠다.

(우선 학급으로 학습을 제한하여 생각해 볼 때)

헤로 반 브루멜른(앞으로는 헤로 라고 약칭하겠다.)은

'교실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십니까?" (IVP. 1996. 3. 25 / 2012. 5. 25 초판 11쇄)

 

제4장에서 학습을 위한 학급의 구조화

 

라는 주제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 학습 공동체의 구성원인 교사와 학생

- 인격적 관계에서 생기는 죄로 인한 분열 극복하기

- 제자도를 향한 훈육

- 교정적 훈육

- 학교 생활의 구조화

- 물리적 환경의 구성

- 학습을 위한 그룹 구성

- 학습 센터의 이용

- 인격적인 학습

- 제자도를 위한 구조화

이상의 소제목들이 제4장을 구성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인격적인 학습]이 핵심이다.

학습이란? 인격적인 학습을 말한다.

인격적인 학습이란 무엇인가?

 

"아주 완고한 행동주의자들이라고 해도, 결국 학습이 비인격화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123쪽)

 

그러나 인격화된 학습이란 어떤 인간관을 가지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인간관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그렇다.

성경적인 인간관에 기초하여 생각할 때, [인격화된 학습]의 뜻을 잘 분별해야 한다.

(On the basis of a Scriptual view of the person,

a number of meaning of personalized learning need to be rejected.)

 

1. 인격화된 학습은 개별화 학습과 같은 말이 아니다.

(First, personalized learning is not the same as individualized learning.

Individualized learningI(e.g. through computer-based instruction : CBI, 개별화된 학습) does not

necessarily meet the learning needs of the person, nor does its exclusive use prepare persons to live in community.

개별화 학습은 인간의 학습 욕구에 딱 맞는 것이 아니며, 개별화 학습만으로는 공동체안에서 잘 살아가도록 준비시키는

일을 하지 못한다.

개별화 학습은, 어떤 기본적인 개념과 기능을 학습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결정론적이고 행동주의적인 인간관에 기초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한편으로 매일 강의로만 때우는 교사 역시 [인격적인 학습]이 이루어지게하지 못한다.

이 방법은 모든 학습자의 요구(needs)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든 학습자들이 하나님의 책임있는 형상으로서의

소명을 실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습자들은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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