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은 흐른다(4)

 

<신식학교>

133쪽 신식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나는 일찍부터 들어 왔고, 지난 가을부터는 부모님도

가끔 그 이야기를 하셨다.

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아주 신기한 것이라고 했다.

거기에서는 학생들에게 고전 한문도, 습자도 시 같은 것도 가르치지 않고, 대양의 서쪽

유럽이라는 곳에서 수입해 온 신식 학문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그곳이 지구의 어느 곳에

있는지, 그 학문이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정확히 몰랐다.

134쪽 어떤 사람들은 고등 산수와 어려운 의술을 가르친다고 말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지리학과 천문학까지 가르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들 이 학교에서 한학은 가르치지 않아서 아이들을 망쳐 놓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과 오랫동안 상의하여, 나를 일 년 동안 그 곳에서 교육시키기로

결정하셨다. 내 나이 열한 살이지만 나이에 비해 고전을 잘 읽어 냈기 때문이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내가 몇 달 전에 배운 '중용'과 '맹자'로 당분간은 할 만했으나, 그 다음에 배워야

할 책들이 나에게는 역시 너무 어렵다고 하셨다.

 

부모님이 신식 학교에 가고 싶으냐고 물으셨을 때,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나는 외아들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뜻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문이며 기타 한 시 읽기를 좋아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믿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원하신다면 가 보겠습니다."

 

<시계>

150쪽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나는 자연 시간에 조금 알아들은 것과, 유럽에 관해서 들은

새로운 것들을 아버지께 이야기해 드리기 위해 곰곰이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아버지는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새로운 것이라면 기쁘게 들으셨다.

나는 들은 것을 모두 빼놓지 않고 이야기했고, 조금이라도 유럽에 관한 것은 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렸다. 유럽 글자가 적힌 종이 조각이며, 고층 건물이나 철교, 탑, 사진 등, 이

모든 것을 아버지는 오랫동안 세밀히 살펴보곤 하셨다.

 

151쪽 기섭이는 한동안 유럽에 살았던 중국 황태자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황태자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 작별 인사 겸 그 동안의 호의에 감사의 뜻을 전하려고 그 나라의

제일 높은 사람을 찾아갔었다. 그는 마침 성 밖에서 자길이 많은 길을 청소하던 정원사를

만나, 그에게 주인을 만나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정원사는, "내가 바로 이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유럽에는 다른 미개국에서와 같은

그런 주인도 없고 종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더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는 무척 즐거워하셨다.

아버지는 기쁨에 차서 말씀하셨다.

"유럽 사람이 바로 진정한 사람이야."

 

162쪽 누나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한자도 없고, 깊은 뜻도 지닌 고전 문구도 없어. 너는 이 책으로 현명해지리라고 믿니?"

"이 책에서 너는 뭘 배우니?"

누나는 거만한 태도로 책장을 넘기며 물었다.

"참 딱하구나. 너는 이미 중용도 읽었고, 또 많은 옛 한시를 외울 줄 알고, 심지어 율곡의 일화

까지 옮겨 써 보았잖니? 그런데 이제 이런 가치도 없는 책으로 너의 재능을 낭비하고 있잖아."

 

어진이 누나는 영리했다. 책 읽기를 좋아했고, 많은 일화며 소설들도 제법 읽었다. 어머니도

미처 모르는 고전 문장을 외우기도 했다. 사람들은 우리 남매들 중에서 어진이 누나가 가장

영리하다고 했다. 또 나를 자주 꾸짖는 유일한 누나였다. 누나는 내 글씨가 엉망이고, 내 말은

멋과 위엄이 없다고 꾸짖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나는 누나와의 대화를 피했다.

"새 학문은 달라."

마침내 나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163쪽 "이 책에서는 매일 수천 리를 달리는 기차를 어떻게 만드는지, 그리고 달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과, 전력을 이용해서 불을 켜는 방법들을 가르쳐 줘."

"그러니까 너는 현인이 될 수 없어."

누나는 걱정스런 말투로 말했다.

"지금은 다른 시대가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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