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은 흐른다(2)

 

보통 책읽기의 순서를 거꾸로 하권을 읽고 상권을 읽게 되었다.

학교 도서실에 가서 빌린 후, 이틀만에 다 읽게 되었다.

 

저자의 어른 시절에 대해서 비록 작품을 통해서이지만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별히 조선말의 그 혼탁한 시기에 양반 지주 가정의

일상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실감나게 읽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자녀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이 깊은 인상을 지우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한문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과 그것이

단순한 암기 교육이 아니라 아동들이 발전단계에 따라서 엄격하지만 흥미롭게

이루어졌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책 내용 중에 그런 부분을 몇 군데 적시해 본다.

 

23쪽 매일 아침 수암은 아버지한테서 새로운 한자 넉 자씩을 배웠다. 나는 그 옆에 조용히

앉아서, 그가 아버지한테서 풀려 날 때까지 기다렸다.

처음에는 한 자 한 자씪 배우고, 나중에는 넉 자를 모두 합해서 뜻과 그 음을 따라 외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나도 곧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24쪽 어느 날 아침 아버지는 내게 새 책 한 권을 주시면서

"이 책을 열심히 보도록 해라. 이제부터 너도 배워여 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 책은 누런 표지에 파란 실로 꿰맨, 수암의 책과 똑같은 것이었다. 나는 책장을 폈고,

아버지는 나에게 첫 줄 네 글자를 가르쳐 주셨다. 매우 엄숙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온 몸이 마비된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후 얼마 있다가 우리는 붓글씨를 배우게 되었는데, 읽는 공부보다 훨씬 즐거웠다.

우리는 각자 벼룻집과 여러 장의 습자지를 받았고, 먹 가는 법부터 배웠다. 벼루의

오목하게 들어간 곳에  물을 아주 조금 따라 붓고, 먹으로 물이 기름처럼 진해질 때까지

오랫동안 앞뒤로 갈았다.

그 다음, 우리는 큰 붓으로 습자책에 따라 한 획 한 획씩 썼다. 습자 연습을 하는 데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우리가 처음 쓴 글자는 하늘 천 자였는데, 이 한 자를 적어도

백 번이상 썼다. 우리는 청소부가 총채를 쥐듯이 붓을 단단히 잡고, 엷은 종이에다가

위에서 아래까지 하나 가득 차도록 마구 썼다. 손가락이 온톧 먹물투성이가 되었다.

 

27쪽 그 다음에는 우리가 배운 천자문의 순서대로 검을 현 자와 누루 황 자를 써 나갔다.

우리는 방에 있는 깨끗한 돗자리를 더렵혀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항상 안채의 마루에서

글을 썼다. 그러나 우리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날 일, 달 월, 별 성, 별 신

자를 썼다.

 

36쪽 이런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쉬지 않고 한문책을 익혔다. 그 책의 표지에는

'천자문'이라고 쓰여 있었다. 꼭 천 자가 적혀 있는 이 책 속에는 한 줄에 넉 자씩이

서로 운을 맺고 있었다. 이 책은 본래의 제목 외에도 부제로 '백수문'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가 이 책을 끝까지 다 배우고 난 다음에야, 이 책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이 책의 저자는 죄수였는데, 그는 젊은 나이에 중국 황제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위대한 시인이었기 때문에 그를 아끼던 모든 백성들이 그를 살려

달라고 간청했다. 그래서 황제는 그에게 매우 어려운 과제를 내주면서, 이걸 풀기만 하면

살려 주겠노라고 했다. 그 어려운 과제는 아무렇게나 모아 놓은 천 개의 글자를 가지고

37쪽 하룻밤 사이에 훌륭한 시를 짓는 일이었다. 사형을 선고받은 그 젊은 시인은 성공적으로

과제를 풀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그가 시를 가지고 황제 앞에 나타났을 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그 하룻밤 사이에 그는 과제에 매달려 백발노인으로

변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가 너무나 훌륭했기 때문에, 황제는 그를 위대한 시인으로

인정하고 그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

 

우리는 아버지 앞에 조용히 앉아서 이야기를 아주 감동 깊게 들었다. 그가 어떤 범죄를 저질

렀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죽음과의 투쟁에서 그의 머리가 완전히 하얗게 백발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은 우리를 매우 슬프게 했다.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서 훈장님 한 분을 모셔다가 바깥채에 서당을 차리셨다. 아버지와

친한 집안의 아이들까지 이 서당에 다니게 되면서 우리의 생활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우리는 이 때부터 매일 아침 낯선 훈장 선생님한테 가서 읽기와 쓰기를 배웠다.

우리는 이 새로운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39쪽 왜냐하면 저녁 때까지 가만히 앉아 꼼짝도 못 하고 글을 배워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쉬는 시간이 되어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일은 매우 재미있었다.

그 아이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놀이를 많이 가르쳐 주었다.

40쪽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놀이는 '제기차기'였다. 제기는 배드민턴

공과 비슷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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