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키운다면 (39) / 최대규
다양성이 하나에서
수렴과 확산
요소와 단계, 맥락에 따라
유형에 갇히지 말아야
유형 안에 머무르지 말고 자유롭게 사유하기,
사유안에도 갇히지 말고 자유롭게 생명의 발현으로 나가기
어린이라도 한 인격으로 대하고 존중하여 각자의 특성을 따라서 맞춤형으로 교육과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대한 섬기고 도와야 한다. 이것이 가정과 사회와 국가, 교회가 해야할 교육의 중요한 과업이다.
그러나 이제까지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교육은 한 인격의 존엄성 보다는 국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한 사람을 경제적 이익 창출의 요소로 보고 교육하기를 쉬지 않고 있다. 21세기의 경쟁 사회에서 각자 도생할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으로 키우자고 하지만, 결국은 국가의 생산성 극대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교육을 보고 있을 뿐이다.
국가 전체주의의 유증이 뿌리깊은 자리를 잡은 것은 일제 시대 이후, 군사 독재시대, 10월 유신과 국민교육헌장 등의 잔재일뿐만 아니다.
교육이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넘어간 이후, 국가 공동체의 공립학교에서 시민 교육을 전담하면서 공적 자원을 투자하여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교육의 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삼은 이후에 당연한 귀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교육의 맥락에서 개인의 수월성 교육을 강조하는 것도 결국은 공동체에 기여하는 개인의 육성에 목표가 있을 뿐이다.
너무 극단적으로 몰아서 이야기를 해보았다.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는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개인과 공동체는 함께 가게 되어 있다. 개인이 공동체를 떠나서 독존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한 인격의 존엄함을 강조하고 그 인격에게 주어진 탈렌트를 최대로 발현시킬 수 있는 교육이라는 것은 단지 그 개인만을 위해 주장하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개인과 공동체와의 관계를 바라볼 때 어느 한 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친 관점이 아니라 개인은 공동체를 위하고, 공동체는 개인을 위하는 균형잡힌 관점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꼭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개인과 가정, 개인과 사회, 개인과 교회와의 관계에서도 견지되어야할 중요한 관점이다.
한 개인을 살려내기 위해 국가의 전 자산이 동원될 수 있다. 반대로 국가를 위해서 한 개인의 전체 자산이 다 희생적으로 드려질 수 있다.
이렇게 개인과 공동체가 서로 긴밀한 상관관계 안에서 맥락을 이어갈 수 있다면 그 사회와 공동체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살만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의 인구절벽 문제나 청년실업 문제, 노인 문제들이 이렇게 간단하지만 중요한 원칙 위에서 생각되고 풀어지게 된다면 많은 염려와 걱정을 내려놓게 될텐데, 자기 중심적 사고와 맥락으로 치닫고 있는 관점의 팽배가 지극히 염려스럽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이 사회 공동체를 바라보면서 영위해가는 사회와 개인은 복받은 개인과 사회이다. 아무리 혼돈스런 어둠이 작용하는 현실이라해도 이 빛안에서 호흡하고 살아가는 개인과 사회는 어둠에 먹히지 않고 오히려 어둠을 정복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빛 안에 거하자. 어린이와 청년들과 노인들 모두 각자의 충심으로 빛 안에 거하자. 가정과 사회와 직장과 국가 공동체도 이 빛 안에서 영위해 갈 수 있도록 하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각자의 인격의 존엄함을 인식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빛으로 호흡하고 빛을 따라 살아가면 어둠에 먹히지 않고 오히려 어둠을 밝히어 이 사회와 공동체에 진정으로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각 개인의 독특한 학습 유형이나 성격 유형이나 기타 각자의 개별성을 창처럼 찌르는 것으로 주장하고 사용할 것이 아니라, 무지개 속의 한 색깔처럼 빛 속에 어우러져 있지만 각자의 색깔을 뭉개거나 잊어버리지 않고 들추어낼 때에 드러나도록 잘 다듬어서 한 빛으로 세상을 밝히도록 해야 한다.
이럴 때 각각의 색깔은 각각의 색깔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색깔들이 나와 다른 적대적인 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서 나를 보완하고 서로를 세워주는 돋보이게 해주는 그런 맥락과 배경이 될 것이다.
학습에서도 삶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를 위해서 배려하고 서로를 세워주는 유형을 가진 개인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
눈은 눈으로, 귀는 귀로, 입은 입으로, 창자는 창자로, 허파는 허파로, 심장은 심장으로, 뇌는 뇌로, 다리는 다리로, 팔은 팔로, 머리털 하나도 머리털로서 각자의 특징을 다른 것에 비교하여 열등감을 갖거나 우월감을 가질 것이 아니고 서로의 다름을 인식하고 존중하며 나는 너를 위해, 그리고 너는 나를 위해 그렇게 하나가 되어 한 몸으로 살아가고 움직여가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각자가 되자.
자녀 교육은 이러한 확고한 인식을 가진 교육자들에 의해서, 부모와 교사와 어른들, 기성 세대에 의해서 이끌어주는 사회적 기여가 되어야 한다. 한 개인의 존엄함을 세워주고 키워주고 사회 안에서 기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살려주는 행복한 과업이 되어야 한다.
자녀들은 그 안에서 참으로 행복을 누리고 사랑을 받고 사랑을 키우며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발전해 가야 한다.
다양성이 하나에서
수렴과 확산
요소와 단계, 맥락에 따라
유형에 갇히지 말아야
유형 안에 머무르지 말고 자유롭게 사유하기,
사유안에도 갇히지 말고 자유롭게 생명의 발현으로 나가기
어린이라도 한 인격으로 대하고 존중하여 각자의 특성을 따라서 맞춤형으로 교육과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대한 섬기고 도와야 한다. 이것이 가정과 사회와 국가, 교회가 해야할 교육의 중요한 과업이다.
그러나 이제까지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교육은 한 인격의 존엄성 보다는 국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한 사람을 경제적 이익 창출의 요소로 보고 교육하기를 쉬지 않고 있다. 21세기의 경쟁 사회에서 각자 도생할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으로 키우자고 하지만, 결국은 국가의 생산성 극대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교육을 보고 있을 뿐이다.
국가 전체주의의 유증이 뿌리깊은 자리를 잡은 것은 일제 시대 이후, 군사 독재시대, 10월 유신과 국민교육헌장 등의 잔재일뿐만 아니다.
교육이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넘어간 이후, 국가 공동체의 공립학교에서 시민 교육을 전담하면서 공적 자원을 투자하여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교육의 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삼은 이후에 당연한 귀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교육의 맥락에서 개인의 수월성 교육을 강조하는 것도 결국은 공동체에 기여하는 개인의 육성에 목표가 있을 뿐이다.
너무 극단적으로 몰아서 이야기를 해보았다.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는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개인과 공동체는 함께 가게 되어 있다. 개인이 공동체를 떠나서 독존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한 인격의 존엄함을 강조하고 그 인격에게 주어진 탈렌트를 최대로 발현시킬 수 있는 교육이라는 것은 단지 그 개인만을 위해 주장하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개인과 공동체와의 관계를 바라볼 때 어느 한 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친 관점이 아니라 개인은 공동체를 위하고, 공동체는 개인을 위하는 균형잡힌 관점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꼭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개인과 가정, 개인과 사회, 개인과 교회와의 관계에서도 견지되어야할 중요한 관점이다.
한 개인을 살려내기 위해 국가의 전 자산이 동원될 수 있다. 반대로 국가를 위해서 한 개인의 전체 자산이 다 희생적으로 드려질 수 있다.
이렇게 개인과 공동체가 서로 긴밀한 상관관계 안에서 맥락을 이어갈 수 있다면 그 사회와 공동체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살만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의 인구절벽 문제나 청년실업 문제, 노인 문제들이 이렇게 간단하지만 중요한 원칙 위에서 생각되고 풀어지게 된다면 많은 염려와 걱정을 내려놓게 될텐데, 자기 중심적 사고와 맥락으로 치닫고 있는 관점의 팽배가 지극히 염려스럽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이 사회 공동체를 바라보면서 영위해가는 사회와 개인은 복받은 개인과 사회이다. 아무리 혼돈스런 어둠이 작용하는 현실이라해도 이 빛안에서 호흡하고 살아가는 개인과 사회는 어둠에 먹히지 않고 오히려 어둠을 정복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빛 안에 거하자. 어린이와 청년들과 노인들 모두 각자의 충심으로 빛 안에 거하자. 가정과 사회와 직장과 국가 공동체도 이 빛 안에서 영위해 갈 수 있도록 하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각자의 인격의 존엄함을 인식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빛으로 호흡하고 빛을 따라 살아가면 어둠에 먹히지 않고 오히려 어둠을 밝히어 이 사회와 공동체에 진정으로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각 개인의 독특한 학습 유형이나 성격 유형이나 기타 각자의 개별성을 창처럼 찌르는 것으로 주장하고 사용할 것이 아니라, 무지개 속의 한 색깔처럼 빛 속에 어우러져 있지만 각자의 색깔을 뭉개거나 잊어버리지 않고 들추어낼 때에 드러나도록 잘 다듬어서 한 빛으로 세상을 밝히도록 해야 한다.
이럴 때 각각의 색깔은 각각의 색깔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색깔들이 나와 다른 적대적인 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서 나를 보완하고 서로를 세워주는 돋보이게 해주는 그런 맥락과 배경이 될 것이다.
학습에서도 삶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를 위해서 배려하고 서로를 세워주는 유형을 가진 개인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
눈은 눈으로, 귀는 귀로, 입은 입으로, 창자는 창자로, 허파는 허파로, 심장은 심장으로, 뇌는 뇌로, 다리는 다리로, 팔은 팔로, 머리털 하나도 머리털로서 각자의 특징을 다른 것에 비교하여 열등감을 갖거나 우월감을 가질 것이 아니고 서로의 다름을 인식하고 존중하며 나는 너를 위해, 그리고 너는 나를 위해 그렇게 하나가 되어 한 몸으로 살아가고 움직여가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각자가 되자.
자녀 교육은 이러한 확고한 인식을 가진 교육자들에 의해서, 부모와 교사와 어른들, 기성 세대에 의해서 이끌어주는 사회적 기여가 되어야 한다. 한 개인의 존엄함을 세워주고 키워주고 사회 안에서 기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살려주는 행복한 과업이 되어야 한다.
자녀들은 그 안에서 참으로 행복을 누리고 사랑을 받고 사랑을 키우며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발전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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