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실과 허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부모에게서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교육을 통해서 사람이 되어간다. 교육은 사람이 사람되게 되는 길이다.

그러니 교육이 개인에게 얼마나 중요하며, 또한 그런 개인들로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볼 때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이 교육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교육의 책이다. 과연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알려서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도록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계시의 책이다.

사람이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 곧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도 알아야 하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계시하는 교육의 책이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비로소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바르게 알고

그럼으로써 사람이 자기의 사람된 본분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된다.

 

성경은 이런 사실들로서 부모에게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것을 명하셨다.

신 6:4 이스라엘라 들으라.

(들으라 하신다. 듣고 깨달으라는 말씀이다. 즉 듣고 배우라 하신다.)

가르쳐 주시길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이시다."(신실하신 언약의 주이신 하나님이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사람이 행해야 할 바를 교육하신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먼저 자신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 마음에 변화를 받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교육의 요체이다. 교육은 다른 사람이전에 자기 자신의 마음에 변화를 받고 자라가는 것이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 분을 사랑하며 인생의 본분을 다하는 사람됨을 가르치는 일을

부모된 자들에게 맡기시며 명령하셨다.

 

1. 자녀교육은 전적으로 부모 책임이다.

창 17: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행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런 언약의 말씀에 비추어 자녀 교육은 그 부모들의 막중한 책임이다. 그러므로 자녀 교육이 제대로 되느냐는

그 부모에게 달렸다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은 면이 있다.

자녀의 구원의 문제는 부모에게 달려 있지 못하다. 역사를 통해서 그런 사실들을 확인하게 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떠했나? 그에게서 이스마엘과 이삭이 나왔다.

이삭은 어떠했나? 그에게서 에서와 야곱이 나왔다.

예수님은 어떠했나? 그에게서 11사도와 가룟 유다가 나왔다.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교육하신 제자들 중에서 가룟 유다가 나왔다. 그러니 예수님의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물론 예수님은 부모가 아니시다. 그러나 스승으로서 교육으로 말하면 부모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다.

자녀 교육이 부모의 교육한 대로 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자녀 교육의 책임을

무시하고 별 수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교육을 넘어서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여기에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교육은 바로 이런 차원의 일이다. 이런 과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르치는데 그것을 가르치는 자가 아무리 잘 가르친다고 해도 학습자의 주체적 역량에 의해서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기계적으로 "콩 심은데 콩 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육을 통해서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어디까지가 교육의 경계인가? 어디까지가 사람, 부모의 일인가? 어디까지 부모의 책임인가? 

 

2. 교육의 전부를 말하면 그것은 속는 것이다.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그런 마귀의 궤계가 있다.

   그것은 교육으로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고

   하나님의 경륜에 포함되는 부분이다.

- 교육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면 그것은 속이는 것이다. 교육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나님의 경륜에 속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그만큼 할 수 있는 것이 교육이다.

"콩 심은 데서 콩 나는 것과 같은 기계적 인과론적인 이론으로 다 설명될 수 없는 것이 교육이다.

왜 에서는 이삭와 리브가의 교육을 받으면서도 그렇게 언약에 대해서 무시하는 자가 되었을까?

왜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그런 훌륭한 가르침을 받고도 사탄에게 팔리는 자가 되었는가?

어떻게 거칠었던 야곱의 10아들들이 이스라엘의 지파의 족장들로서 서서 나갈 수 있었던가?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은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부지런히 그 자녀를 가르치지만

그것으로 다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며 그 도구로 써 주시기를 바라고

나아가야 한다. 교육으로 충분하다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교육이 필요한 조건임을 무시하면 안된다.

 

그리고 사람인 부모의 부족이 그 교육이라는 것 속에 포함되어 있음에 두렵고 떨림으로 자녀 교육을 해야 한다.

 

3. 부모가 이런 것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을 의지하거나 교육방법에 매몰되지 않고, 오직 주님을 의지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신다.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크고 심대한가?

  그러나 주의 은혜는 그것을 능히 이기고 살게 하시는 복음이다.

 

부모의 부족, 부모의 죄악을 붙잡게 하신다. 자녀의 불순종이 부모의 책임이라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부모로서는 자녀의 불순종을 볼 때 자신의 죄악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죄악 정도가 아니라 인류의 죄, 이 역사와 문화를 통하여 흐르고 있는 인간의 죄

그 죄의 심연을 절절히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결코 의로운 자다. 나는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최선을 다했으니 나는 할바를 다했다고 손을 놓을 수 있는 자가 과연 이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있겠는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자녀 교육을 통해서, 교육을 통해서 죄악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런 교육이 인간 구원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훌륭한 인문주의적 교육학자들은 교육이 그런 구원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교육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 그러므로 교육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의 길이다 라고 주장하며

구원의 논리를 교육에다 기대어 논다. 그리고 모든 길을 교육에서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구원은 사람에게 달린 것이라는 인본주의의 극치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교육은 구원의 수단이 아니다. 유일한 길이 아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다.

오히려 교육은 죄를 깨닫게 하는 길이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게 하는

길이 된다면 교육은 최상의 교육을 하는 셈이 된다.

롬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롬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갈 3: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으 때가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이제  생각해보니 교육은 비유컨대 율법과 같다. 즉 부모에게 맡기신 교육이라는 것은 율법과 같은 것이다.

그것이 악해서가 아니라 선한 것이다. 율법은 선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에게 명하신 온전하신 계명이다.

그것을 그대로 행하면 사람은 사는 것이다.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그것을 온전히 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오히려 율법은 사람을 죽이는 게 되고 만다. 무엇 때문에 그런가? 사람이 범죄하였고 죄인이기 때문이다.

범죄한 사람은 참되고 거룩한 율법으로 인해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될 뿐이다. 율법을 지킴으로 사람답게 되지 못한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의 저주 아래서 신음할 뿐이다. 빛이 없다. 빛이 비추되

어둠이 심하여 오히려 어둠으로 향한다. 자신의 어둠이 얼마나 큰 어둠인가를 깨달을 수 있을 뿐, 빛으로부터

멀리 피하게 된다. 너무나 밝은 빛이기 때문에 자신의 어둠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교육은 빛이다. 그러나 그 빛으로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오히려 정죄할 뿐이다.

교육이 하는 일은 너는 할 수 없다. 너는 죄인이고 죄의 결국은 죽음 뿐이다라는 것을 가르쳐 줄 뿐이다.

정직한 교육자는 여기까지 하는 것이 최선의 교육이다.

부모라고 예외가 아니다. 부모가 기껏 할 수 있는 자녀교육은 너가 죄인이라는 것이다.

율법으로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너는 죄인이다. 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신 6장의 쉐마도 "하나님은 한분이신 하나님이시고, 따라서 그분을 생명을 다해서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그분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웃을 나의 몸같이 사랑하는 것인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하는 척 할뿐이다. 너는 할 수 없다를 가르쳐야 한다.

 

아, 이제야 비로소 교육의 실체를 알게 된다.

그렇다면 강단에서 가르치는 바는 무엇이고 예수님의 가르치는 바는 무엇인가?

진리이지 않는가? 진리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죄가 너무도 크고 크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중차대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의 길이 어디에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그에게서 생명을 공급받고 살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교육이 아닌가?

결국 교육이 아닌가? 아니다.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교육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사람의 손에 사로잡히는 것이 된다. 그러면 그것은 율법이고 빛이다.

 

그 인식의 틀에서의 전환,

교육이라는 틀에서의 전환,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의 전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생명이고, 거기에만 생명이 있음을 인정하고 인식하고

그 안에서 사는 것, 성신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 거기에만 생명이 있음을 알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

 

누가 이런 삶을 살 수 있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교육의 삶이 아니다. 이러한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어진다.

교육은 끊임없이 허무를 노래하고 비탄을 노래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자신을 던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성신을 의지해야 한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

 

얼마나 교육에 목매달고 애타하는가?

부모가 교육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 조건이 아님을 제대로 알고 가야 한다.

교육은 그런 것인다.

신앙 교육도 그렇다. 우리 교회 교육도 그렇다.

벌써 사람이 나서게 된다.

 

이런 데서 겨우 건짐을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인간의 행위가 되는 교육은 그야말로 죽이는 교육이다.

오직 믿음으로 그것을 부인하고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끊임없이 교육을 부정해야 한다. 교육을 하면서 부정해야 하는 교육이다.

얼마나 많은 지식이 있는가? 사람의 인식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얼마나 많은 지식이 있는가?

그 지식이 얼마나 허구이고 진리에서 먼가? 그것이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이고 지식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바로 이런 것을 인식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이 복음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녀들을 발견해야 한다.

 

교육의 실과 허(20150205).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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