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반에서 성찬상으로(9)
9 그대의 생명을 그대 밖에서
103쪽
<'찾으시겠습니까'와 '발견하셨습니까'>
공적 신앙고백 예식문의 둘째 질문에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을 미워하는지를 물을 뿐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우리 밖에서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 것인지에 대하여도 묻는다.
"그대의 생명을 그대 밖에서,
곧 우리의 유일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찾으시겠습니까?"
104쪽 '찾는다'는 단어는 확실성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
예레미야에게도 '찾고''발견하는' 일은 하나였다. 예레미야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말할 때에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으면, 나를 찾을 것이고 나를 발견할 것이다"(렘 29:13)
예수님
마 7:7 "찾으라. 그러면 찾을(발견할) 것이요"
하늘 아버지께서는 구하고 기도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자기의 구원을 자기 밖에서,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찾는 사람은 그저 어떤 막연한 암시만을 갖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구원이 자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
<오직 그분에게서만>
105쪽
생명을 우리 밖에서, 즉 유일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는다고 고백할 때에,
우리는 그분께만 우리의 시선을 고정한다.
'유일하신 구주'라고 할 때는 다른 어떠한 소위 '구주들'과 '구주의 경쟁자들'과 '구주의 조력자들'도 배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사 43:11)
예수님께서도 지상에 계실 때에 이렇게 선언하셨다.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또한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신을 구주라고 불렀다. 심지어 아우구스투스는 황제로 즉위하면서
자신을 구주로 선포하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이 건설한 '로마의 평화'(pax romana)안에서 세계를
안전하게 구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구주로 숭배를 받았다.
위대한 로마 제국의 모든 백성들은 그의 제국 안에 있는 모든 신령한 통치로 인한 것들이라고
고백하여야 했다.
백성들은 황제들을 볼 때에, 신적인 영예를 돌려야 할 위엄이 있는 전제 군주이자 정복자로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을 자신 안에서 찾지 않고, 다른 어떤 사람들 안에서도 찾지 않으며,
오직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찾는다는 것을 고백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분을 떠나서는 구원도 실제적인 형통함도 없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쟁의 지배와 난폭한 위협들로부터가 아니라, 죄로부터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일관성 있는 고백>
107쪽
자신의 밖에서 생명을 찾을 때에 우리는 일관되고 철저해야 한다.
주님께서 진실로 충만한 구원을 소유하신 구주이시라면 그분은 우리를 완전하게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분은 죄의 권세로부터 단지 '영혼들'만이 아니라 '육체들'도 구원하신다.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의 몸과 영혼을 함께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는 예수님을 통해 무언가를 기대하면서도 '육체'를 위해서는
기대하지 않고 오히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자신의 정신적 재능과 의지적인 능력과 육체의 힘을
의존한다면, 결국 우리는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사람들 안에서 혹은 교회의 기둥들과도 같은 대상에서 우리의 구원을 찾거나
주님의 나라 안에서 행하는 자신의 행위들 속에서 구원을 찾는다면 우리는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완전함에 도달하지 않았습니다!>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08쪽
우리의 구원을 우리의 밖에서,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엄청난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 전체'를 그분 안에서 찾는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신앙고백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아직 완전함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도 시인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의 삶 전체가 구원받았음을 고백하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삶에 여전히 주님의 은혜와 무관한 듯이 살아가는 영역이 많이 있음을 고백한다.
'여전히 우리의 삶에는 뿌리 뽑혀야 할 고집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아간 정욕이 살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우리 안에는 아직도 성신님을 의지하여 정복하여야 할
나쁜 습관들이 많이 남아 있다.
참으로 우리의 삶에는 여전히 잘라 내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렇게 가지치기를 해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라야 비로소 우리의 삶에서
열매들이 익어 갈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잘라 내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다.
<주님은 우리 안에>
우리는 생명을 우리 '밖에서'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한 포도나무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109쪽
포도나무와 그 가지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의 만찬을 기념하기 전에 기도를 드릴 때에도, 우리는 같은 내용을 고백한다.
"그리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 가운데 살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우리가 그분 안에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성찬 상에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본성이 완전하며 의롭다고 선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때에 우리는 우리 밖에서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생명을 찾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원래 죽은 자들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본래 '죽은 자'들이다.
110쪽
그러나 유일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는 '살' 것이다.
갈 2:20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사도는 자기 삶의 한복판에서 물러나게 되었으며,
더 이상 자신이 삶의 모든 일들의 중심축이 되지 않았다.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삶의 중심이 되셨고,
그에게 생명의 근원이 되셨으며, 그의 삶을 지배하는 능력이 되셨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의 마음과 환경에 역사하시어 그를 인도하시고 강권하시는 분이 되셨다.
바울의 목표는 주님이었고 또 주님과 누리는 교제였으므로,
그의 생각과 일이 모두 그분에게서 출발하였으며,
모든 일에서 주님을 고려하였고,
주님께로 자신의 삶을 맞추었다.
바울의 삶과 그의 하는 일들 속에서 오직 주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 되셔야 했다.
바울을 모든 것을 주님의 기준으로 평가하였다.
- s. 흐레이다누스.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의 신약교수
(아, 이렇게 생각해보니
내 자신의 존재가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내가 중심부라고 생각한다면
우주의 질서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니 진리는 내가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 그것도 아주
말단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끊임없이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주장하라고
교육을 받아왔다. 이 세상의 상술, 홍보 매체의 정신은 고객이 왕이다. 즉, 당신이 왕이다라고
주장하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 소비주체로 끌어내고 자신이 아닌 기업을 위한 고객이 되게 한다.
나는 왕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경영 가운데 있어서 그 전체 진행의 한 부분이
되게 하신 사실로 인하여 놀라고 자신을 바르게 돌아보아야 할 그런 자이다.
내가 내세울 것이 있다면 오직 그리스도 예수, 나의 주님이시다. 이것이 진리이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시요, 가장 높으신 분이시지만, 가장 낮게 되어서 종의 형체를 입어
하나님께 죽기까기 복종하셨다. 그렇게 될 수 있는가? 나는 오히려 가장 낮고 천한 존재로서
오히려 자기가 하나님같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자신을 높이고 자신의 생명과 모든 것을 자기 것인양
마음대로 처리하고 소모하는 그런 참으로 가련한 자이다.
이런 죄와 죽음과 마귀의 종노릇하는데서 누가 그 눈을 열어서 진실을 보게 하고
그 귀를 열어서 진리를 듣게 하며, 그 병들고 상처난 것들을 새롭게 하여 온전하게 할 수 있는가?
오직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다. 그러니 내가 내세워야할 분은
오직 우리 주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을 알고 그분과의 사귐 안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로 여김을 받고 지금 그렇게 살도록 하시는 지를 깨달아 주님과 교통하며
그와 같이 형제들을 사랑하고 거룩한 몸으로 그 몸의 지체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나아가기를 소원한다.)
'영상 자료 > 함께 보고 싶어요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례반에서 성찬상으로(10) (0) | 2015.02.03 |
---|---|
보라매공원 별탑에 새 (0) | 2015.01.30 |
20150104 신 16:18-17:13 (0) | 2015.01.04 |
세례반에서 성찬상으로(6) (0) | 2014.12.27 |
세례반에서 성찬상으로(5) (0) | 2014.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