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킬더의 그리스도와 문화

그리스도와 교회와 문화(고재수 교수, 성약, 2008 개정판) 156쪽

결론

 

만일 문화 명령에 대한 스킬더의 견해가 원칙상 성경적이고 바르다면, 그 결과들은 무엇인가? 세 가지 결과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문화적 과업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를 인식해야 한다. 물론 땅을 다스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농부, 곧 밭에서 일하는 사람의 일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문화’는 ‘경작’과 매우 가깝다. 농사는 문화적 과업이다. 우리에게 식량을 제공하려고 동물들과 세상의 자연 자원들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농부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스킬더는 어느 훌륭한 단락에서 문화 명령을 교수와 거리 청소부,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과 “월광 소나타” 작곡자에게 적용한다. 문화 명령 때문에 재능이 있는 우리의 자녀들은 할 수 있다면 공부를 하여 학자도 되고 교수도 되도록 용인되어야 한다. 농부들과 교수들은 서로를 무시해서는 안 되고, 이 세상에서 일하라는 명령 안에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재능을 따라서 협력해야 한다.

다음으로, 청소부가 되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땅을 지키라”는 명령의 일부로서, 우리 사회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 명령은 거리를 깨끗하게 하고 질병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는 것을 함축한다.

스킬더는 식모(주방 노동자)들에 관해서도 말했다. 오늘날은 식모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주부들이 오래전부터 그 일을 맡았다. 주부들은 가전제품들의 도움을 받아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한다. 페미니즘에 맞서서 주부가 되는 것이 “땅을 정복하는” 훌륭한 길임을 주장해야 한다. 그것은 가정이 존속하도록 세상의 자원들을 사용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예술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이 재능도 하나님께서 계발하도록 주신 은사이다. 예술가들이 종종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오명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책임의 일단은 예술계 자체에 있다. 그들은 예술가가 철저히 자유로워야 하고 온전히 스스로 의미있는 예술 작품을 창작해야 한다는 개념을 키워왔다. 이것은 종종 예술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격하고 자신이 일종의 신이 되는 것을 함축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배척한다면 그들은 정당하다. 반면에 예술은 하나님께서 창조 세계에 주신 가능성으로 봐야 한다. 예술가들도 창조된 실재에서 그들에게 맡겨진 부분에 대해 다스리는 일을 해야 한다.

문화 명령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여러 직종에서 일할 수 있다. 교회에서는 직종 때문에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상대는 동료 사역자요, 자기 분야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다.

 

두 번째 결과는 우리의 일상의 과업을 하나님께 드려야 할 순종의 일부분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직업과 일은 우리에게 충분한 돈을 벌게 하거나 생계를 유지하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업을 진척시키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의 직업은 주님을 섬기는 일이다.

물론 모든 직업에는 단조로움과 수고가 따른다. 하지만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도 우리가 주님 앞에서 날마다 수행해야 할 과업의 일환으로 알고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특별히 죄가 세상에 들어온 까닭에 노동이 쉽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일에 따르는 수고를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까닭에 참아 내야 한다(이 점에서 다시 노예들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추수 때가 오면 일꾼들은 기뻐한다. 일이 잘되었을 때 그것은 만족을 준다. 이 기쁨 역시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다. 노동절은 그리스도인의 절기가 되어야 한다.

문화 명령은 주중의 날들에 대한 올바른 관점도 제시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 주간 동안 질질 끌려 다니면서 일하면 안 되고, 마침내 모든 것을 다 완수할 수 있을 때의 즐거움을 취하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주말의 자유를 위해 살아서는 안 되고, 매일의 과업이 그 자체로 중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무의 일부분이다. 그것은 우리의 일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다.

 

세 번째 결과는 교회에서 목사들과 장로들의 의무에 관련된다. 스킬더는 바울을 당대 세계에서의 문화적 능력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바울을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이 복음은 신자들을 다시금 시초에 제정된 의무, 즉 세상을 다스리라는 의무에 직면하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은 일상의 직업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에 비추어 설명한다. 그러므로 목사는 자신의 강설을 신자들의 내면의 삶에 제한해서는 안 된다. 일상의 과업이 강설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 강설은 목사가 섬기는 회중의 일상의 삶을 다루어야 한다. 일터와 교실에서의 윤리가 강설에서 언급되어야 할 내용에 속한다.

같은 원리가 장로에게도 적용된다. 실제로 스킬더는 자신의 책을 장로에 관한 언급으로 마친다.

 

합당한 방법으로 심방을 하는 ‘지혜로운’ 장로는 복되다.

그는 자신이 의식하든 못 하든 ‘문화적’ 능력이다.

 

장로들은 가정을 심방할 때 가정이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일상 생활에 관해서 질문해야 한다. 만일 장로가 마땅히 해야 할 대로 자신의 과업을 수행하려면 그는 하나님의 구원과 우리의 믿음에 관해서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과 관련하여, 그는 우리의 일터와 가정과 학교에서 우리가 받은 문화 명령에 관해서 말해야 한다.

스킬더는 우리에게 다시금 문화 명령을 가르친 하나님의 도구였다. 우리는 것을 이런 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러분의 일상의 과업을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에게 주신

의무의 일부분으로 바라보십시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된 사람들로서 행하십시오.

그리고 성신의 능력을 힘입어 일하십시오.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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