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에 2000년에 쓴 글을 보며
서울독립문초등학교 교사 최대규
지난 2000년 2월에 2차 부임지인 서울관악초등학교 생활 5년을 마치고 3차 부임지인 서울독립문초등학교에 와서 3월에 시작될 새로운 학교 새 학년을 기다리며 쓴 글이 있다. 이것을 다시 돌아보면서 그동안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또는 더 확실해 졌는지를 점검해 보고자 한다. 그 당시 글의 전문은 필요없는 것이므로 중요한 부분만 발췌해 본다.
새학년을 시작하며(서울독립문초등학교 교사 최대규)
2000년을 시작하여 3월에 이르러야 비로소 새로운 아이들과 만나서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게 된다. 사실 날마다 계속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이것이 생명의 중요한 현상 중에 하나이다.
교사는 매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난다는 사실만큼 새로움의 의미를 되씹어보게 하는 것도 없다. 새로운 학교에 가더라도 가장 중요한 새로움의 의미는 아이들을 통해서 다가오게 된다.
이제 교사 생활 9년째에 접어들어 하나님께서 새롭게 깨닫게 하시는 것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의 의미, 그리고 그 속에서 나의 삶의 의미, 그리고 그 삶을 이루는 일의 의미이다.
하나님은 영원한 안식을 목표로 하여 창조하셨고 역사를 시작하게 하셨고 마지막에 완성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사람의 죄악과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통한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는데, 이미 그 구원이 이루어졌고 이긴 싸움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광스러운 입성으로 마침내 그 대단원의 막을 고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영원한 안식, 아브라함이 바라던 하늘에 있는 본향이 완전하게 임하는 날을 바라보고 우리도 역시 아브라함과 같이 나그네의 길을 걷고 있다. 이 나그네의 길은 마침내 본향에 이르는 향방이 있는 길이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들과의 싸움을 그치고 하나님의 품안에서 그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누릴 것이고 그 기쁨이 한량없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서 영원에 이르는 것이다. 가히 그 기쁨의 어떠함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그 사랑에서 맛볼 수 있으나 그 어떠함을 희미한 청동 거울을 보듯이 짐작만 할 뿐 말로나 그 무엇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다.
우리가 이 땅위에서 하는 모든 수고는 헛되이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다. 하나님이 약속하신다. “주안에서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노동은 하나님의 경영하시는 역사에 참여하는 청지기로서의 일로서 의미가 있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우리도 일한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부지런히, 지혜롭게 일하신 것에서 우리는 일의 모범을 배운다. 우리도 힘써서 부지런히 우리의 거룩한 의무로서 노동을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요구 사항이시다. “게으르지 말고 열심으로 주를 섬기라.”
교육도 노동이다. 교육을 성직, 전문직, 노동직 중의 어떤 것 하나로 구분하고 주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서 일해야 하는 거룩한 직임이 있다. 그리고 어떤 일이라도 그 일에 전문성을 키워야 그것의 의미를 바르게 알고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어떤 일이라도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분명히 수고와 땀이 흘러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노동이다(사실 육체 노동과 정신 노동이라고 구분하지만, 정신없이 육체가 기능할 수 없고 육체 없이 정신이 작용할 수 없다.)
이 노동을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먼저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자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노동의 과정과 그 결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기는 것이다. 교육의 과정과 그 결과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기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공립학교에서 근무하든지, 기독교학교에서 가르치든지, 가정 교육으로 대신 하든지 교육 행위가 있는 곳에서 최우선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
새로운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교육과정을 계획하고 준비한다.
교육과정은 가르칠 내용과 가르치는 방법, 그리고 그것이 진행되는 주행로(走行路, course)가 있다. 교육과정의 준비는 사람의 일로 하고, 단지 그 결과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교육과정의 시작과 과정과 결과를 통해 오직 성신을 의지하여 행해야 한다. 주인이시고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의중과 그 뜻을 살피고, 그분이 경영하시는 일에 수종 드는 청지기로서 행해야 한다. 이것은 개인 교사의 경건의 차원에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교육제도 자체가 공적인 도구로서 그런 태도로 하나님을 앙망해야 한다. 이런 체제 안에서 개인 교사는 주의 효력있는 부르심을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부르신 소명의 구체적인 표현으로서 이 일을 수행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함이 새로운 인간 존재의 근본이요 뿌리이다.
구체적인 교육과정을 세우는 일은 교사 개인이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다. 그동안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것들, 그리고 가깝게는 1년 전에 행하던 것들, 그리고 새로운 계획하에서 새로운 주행로를 그리는 것들 이런 것들을 폭넓게 생각하면서 재구성을 하는 것이다.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님을 생각하고 안심해야 한다. 그러나 그 안심이 그런 자료들이나 주변 환경을 의지하는 것으로 나타나면 큰일이다. 오직 의지할 분은 하나님 뿐이시다. 잠시 잠깐이라도 그분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살 수도 없고, 1초도 존재할 수 없다. 어떤 과정도 진행될 수 없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해야 하며,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존재와 속성에 걸맞게 하나님을 대접하고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우리가 행하는가?
여기서도 참으로 나는 죄인일 뿐이다. 하나님의 엄위로우신 의 앞에 견딜 수 없는 그런 벌레와 같은 존재이다. 오직 우리 구주 예수님의 그 중보하시는 속죄의 은혜와 구속의 은혜로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죄사하심에 의지하여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며 행한다. 그리고 그 구속의 효력 있는 부르심을 이루시는 성신의 공급하시는 지혜와 적용하시는 그 은혜에 의지하여 새사람으로 담대히 나아간다.
내가 가르쳐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 주제 진술과 목표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교육과정의 내용이 분류되어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접한다. 전통적으로 교과목에 의하여 내용이 분류되어 있다. 그러나 교육과 교육과정을 공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인지조작기능에 기초하여 교육목표를 명료화하고 분류한다. 그래서 지적 영역, 정의적 영역, 심동적 영역으로 나눈다. 지, 정, 의의 전통적인 인간 삼분법에서 쭉 따라오는 것이다.
그리고 지적 영역에서는 회상, 이해, 적용, 분석, 종합, 평가로 나누어 다룬다. 이런 분류는 학습 활동이 어떤 한 측면에 치우치거나 결핍이 없이 균형 잡힐 수 있게 하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런 분류학은 인간의 인격적인 활동이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이지 않고 각각의 영역이 서로 다르게 기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어떤 개념이나 기능을 가르칠 때조차도 그것이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그것을 중시하는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고, 그런 가치가 거기에 붙박혀 있게 된다.
그런데 기독교학교연합은 지적 영역, 의사 결정적 영역, 창조적 영역 같은 것으로 나누고, 교육철학자들은 인지적 내용과 인지적 기능, 태도와 성향으로 나눈다. 이것은 거기에 도덕적이거나, 정의적이거나, 의사 결정적인 영역을 추가할 수 있는 어떤 중립적인 지식체계가 존재한다고 가정한 터 위에서 나오는 소리이다.
성경은 이와 반대로 우리의 헌신이 ‘모든’ 지식에 스며들고 방향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육에 대한 기독교적인 접근의 모든 목적은 “정의적”이거나 “성향적”아라고 부를 수 있다. 교육에서 어떤 사실이나 기능을 가르치는 것은 벌써 그 사실이나 기능이 중요하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암시하는 것이다. 말로서뿐 아니라 제도나 체계로서 어떤 태도를 이미 전제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교육과정은 그 많은 가르칠 내용 중에서 어떤 것이 중요한 지를 선택하고 그것을 자기 공동체의 중요성과 인식체계나 적응 체계에 맞도록 배열하고 순서 지우는 작업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모든 감추인 것들을 보고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일을 교육이나 교육과정의 명목으로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교수-학습을 기독교적으로 접근할 때, 인지적 내용이나 인지적 기능, 그리고 문제해결과 창의적 능력은 단지 인지적, 기능적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만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성경에 입각하여 믿고,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격려하는 성향과 경향을 발전시키도록 쓰여야 된다. 그리하여 이런 성향을 갖게 되므로 성신의 효력 있는 부르심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들은 책임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 하나님의 언약 백성,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살아가는데 사용되는 도구이다.
교사는 모든 교수-학습활동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임을 그의 전 존재로서 보여야 하며, 특히 수업을 통해서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신앙 있는 교사들은 가르치는 지식이 학생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가리킬 수 있도록 “성경의 안경”을 끼고 계획을 세운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학생들의 지식은 살아있는 지식이 되고 기독교적인 섬김과 실천을 위해 사용된다.
이번 학년도에는 집중적으로 적어도 한 과목이라도 교사로서 가르칠 과목에 대해 또는 주제에 대해 일반적인 진술을 작성하고, 거기에 이어서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을 아주 구체적으로 지적해 보려고 한다. 특별한 개념이나 기능의 습득 정도를 넘어서 양육하기를 원하는 태도와 성향, 헌신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 아이들의 삶 속에서 책임 있고 사랑하는 행동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