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중국무술 20년 ‘소림 소녀’ 무예교수 되다
출처: 조선일보 2007.03.07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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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기업 직원교육 학교 못잖네
출처: 한겨레 2007.03.05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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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초등학교에 2005년에 부임하여

올해 2006년 두번째 정년 퇴임식이 8월 29일(화)에 있었다.

 

작년에 김숙경 선생님이 극구 사양을 하셨지만

후배들이 뜻과 정성을 모아서

조촐하지만 의미있는 퇴임식을 해드렸고,

 

올해는 작년의 일을 토대로 차분하게

송태선, 조정자 두분 선생님의 퇴임식을 8월 중에 거행하게 되었다.

1학기로 정년이 되시는 두 분

 

교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영광 중에 하나가

정년까지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평교사로서 이 영광에 이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는데

아마 갈수록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변화

이것이 21세기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변화는 허공을 치는 것이 되기가 쉽다.

뿌리 없이 깔짝거리다가는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다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안정

교사의 책무 중 하나는 변화 속에 안정을 든든하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자라간다. 변화가 아이들의 특징이다.

성장도 변화가 아닌가?

교사는 이 성장에 동력을 제공한다.

그런데 동력원이 되려면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거품이 사라진 꾸준한 성장

내실있는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교사의 책무이다.

자신도 변화는 존재로서

다른 변화의 동심원이 되어 파장을 일으킨다.

 

송 선생님은

소극적이고 차분한 분이시다.

그러나 소걸음으로 착실히 보행하신다.

무슨 일을 거창하게 하시거나

말을 부풀려 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요약하고 거품을 줄여서 액기스를 내놓으려 하신다. 

 

송선생님이 백미문학에 가입해서 함께 글쓰기를 하면 좋겠다고

추천을 하셔서

머믓머믓하다가

올해 여름 방학의 [문예창작] 연수에 참여하고

부여와 공주 문학 기행 후 드디어 문학회에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좋으신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다.

겸손하며 각각 개성이 있되 창작의 열정을 가지신 분들이다.

 

이것저것 연루되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는 편인데

하기 나름일 것이다.

 

퇴임식에서 송선생님은 평소에 길러오신 여러 가지 악기들을

잔잔하게 연주해 주셨다.

바이올린, 아코디언, 첼로, 하모니카, 플릇 까지

관현악단반을 맡으셨던 특장을 하나씩 하나씩 보여주셨다.

서툴게 들려오는 음의 소리지만

정감이 들어있고 그 마음이 담겨 있는 소리에 귀기울여

박수를 보냈다.

 

맛있는 음식,

모처럼 뷔페 음식에 몇 접시를 비웠다.

고기가 땡기는데 ,,,

죽부터, 생선회, 홍어찜, 갈비찜, 부침, ,,,,,,,,,,떡과 수박까지

배부르게 맛있게 먹었다.

 

 

 

 

 

 

음식과 함께

맛난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식욕을 돋군

6학년 동료 선생님들

나이는 줄줄이 달라도

교사라는 직업에 하나같이 목을 매고

굴비 줄 엮듯이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이야기

 

아이들

가르칠 내용

그리고 선생님

이명희 , 이정옥, 김연옥, 박현배, 박주현, 김정희, 임소은, 전주희 선생님,,,,, 그리고 옆 테이블에 오성만 선생님

그렇게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는 터널을 달려갑니다.

 

지난 4월 어느 날인가?

멋지게 차려입으신 남자 어른이 교실 앞에서 서성거리셨다.

 

나는 6학년 부장을 찾아온 업자인줄로 생각했다.

앨범, 또는 현장 학습과 관련하여

자기 소개를 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선입견과는 전혀 다른 분이셨다.

 

바로 우리 반 아이의 학부모이셨다.

학교 후문 앞에서 이발소를 경영하시는 분이시다.

나이는 50대에 들어서신 분이고

역시 이 봉천동 골짜구니에서 십수년을 이 업으로

일관해 오신 분이다.

 

요즘 남자 이발소는 죽어가는 직종이다.

머리방, 헤어숍, 미용실이 남자들의 머리까지 도맡아서

처리해주니 남자 이용사들은 사라지고 헤어디자이너만 늘어난다.

한때 우리 둘째가 헤어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해서

정말 어떻게 지도해야 하고 난감해 했다.

물론 헤어디자이너가 안좋은 직업이라는 말이 아니다.

전문 디자이너로 활약하는 분을 만나서 한번 이야기를 해보자고 한 적이

있었는데 실천하지는 못했다.

 

나는 동네 이발소를 단골로 해서

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가 되었다.

요즘 8000원이면 머리도 자르고, 앞면도도 받는다.

그런데 블루클럽이라는 체인점이 생기고 나서부터

그곳을 애용하게 되었다. 블루클럽은 남자머리털 커트를 전문으로

하는 곳인데, 옛날 이발소 개념과 비슷하다.

그런데 종업원은 반대로 여자들이 많아.

혹 남자 헤어디자이너도 있지만 대부분 여자들이 머리털을 손질해준다.

값은 5000원 거기다가 10번 가면 1번은 보너스로 머리털을 깎아주는

제도가 있어서 벌써 보너스를 2번이나 받았다.

한달에 1번은 월례 행사처럼 가야만 시원함을 느끼는

생활 속의 중요한 일정을 이곳에서 계속 치룬 것이다.

 

그런데 이 학부모님이 찾아오셔서

진한 이야기를 하셨다.

아들이 우리반인데 이놈이 아버지를 자기 아버지로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이발사인 것을 부끄러워 한다는 이야기이다.

"어휴,,,,,,,,,,,,,,,,,,,,,,,, 눈물을 흘리시면서 하시는 이야기를 듣기가

참 민망했다.

 

소소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이정도에서 줄이고

다음을 기약한다.

하여튼 아버지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

이 형편에서 나는 직업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먼저 직업에 귀천이 없음을 이야기했다.

둘째는 요즘 소위 인기 직업, 의사 중에서도 성형외과 의사라든가, 한의사

그리고 기피 직종인 공대 출신 공돌이들(죄송한 표현), 그리고 외과 의사

 

쉽고 편한 것만 찾아가는 세태를 어떻게 이겨가야 할 것인가?

 

소질과 적성을 따라서 자기 개발을 하고

정말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하려면

어려움을 이겨가야 한다는 요지의 훈계를 한다.

 

아침에 오늘은 부지런을 떤다.

화장실에서 한겨례를 열심히 읽고 있다.

이번 학년에 연구 주제를 [직업과 일]로 정하고 연구 수업도 하고

현장 논문도 진행하고 있다.

 

주변의 어느 것 하나 직업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일과 관련되어 있다.

 

현대시장 사거리의 구두방 아저씨가 눈에 들어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곳에 그분이 계셨기 때문이긴 했지만

20년을 그 한 자리에 계셨다니

이 일이 보통 일인가?

이런 분들을 소개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중요한 교육 자료, 산 교육 자료이다.

말이 따로 필요없다.

 

그러나 긴장은 있다.

누가 앞으로 구두방을 하려고 하겠는가?

아이들에게 과연 권장할 만한 직업인가?

 

무엇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가?

구두방 아저씨의 직업 정신?

구두방을 창의적으로 변신시킬 수 있는 생각의 고리?

 

앞으로 직업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궁금증을 가지고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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