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키운다면 (20) / 최대규
자녀교육, 손자녀 교육
그걸 이야기하자고 시작한 글이다.
[교실이 없는 시대가 온다]는 존 카우치의 소리를 듣는다.
인공지능의 막강한 위력이 점점 현실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서 사람이 만든 것이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아이러니를 겪는다.
내 앞에는 인쇄된지 20년이 훨씬 지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소책자가 놓여 있다. 이것을 사용해서 아이들이 어릴 때 교회와 함께 부지런히 가르치고 아이들과 함께 암송하곤 했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왜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절실한 질문에 대해 마치 누구라도 다 아는 것처럼 뒤로 넘기고, 삶의 당면한 과제인 날마다 먹을 양식을 어떻게 구할까에만 온 정신을 팔고 있는 세상을 산다.
생명이 무엇인가?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는가?
내일 죽어서 없어질 존재라면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최고의 선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생명이 무엇인지를 아주 멋들어지게 가르쳐준다.
야고보서 4장 14절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인간 실존의 정체를 정확하게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이다.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이...
인간의 인권을 주장하고, 최고선인 것처럼 항변하기도 하지만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것이 인간의 생명이다. 누가 그런 안개를 가치있다 하고 그것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받쳐서 지켜내려고 하겠는가?
사람의 생명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끄집어 내어 보이고 알게 해준다.
요한복음 17장 3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인간에게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이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임을 밝히 알게 해준다.
사람이 영원히 산다는 것은 그냥 안개가 영원히 존재하는 것과 같은 존재의 연속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격적인 존재로 각각의 독특한 인격을 발휘하면서 사는 것이다.
여기 요한복음 17장 3절이 말하는 바, '아는 것'은 그냥 백과사전적으로 지식을 소유하는 것, 또는 디지털 컴퓨터에 이진법의 기호로 저장되는 데이터가 아니다.
내가 누구를 안다는 것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친숙하게 잘 알고 그와 사귐을 갖는 것이다. 나는 내 아이를 안다. 아이와 함께 몸을 부딪치며 오랜 시간을 보내며 알고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은 아무리 해도 그 앎에 완전하지 못하고 사귐에 충만하지 못함이 많다.
하물며 사람이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온전하게 알고 삼위일체 하나님과 충만한 사귐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 줄 얼마나 알 수 있겠는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3문이 말하려는 것은 바로 이 생명이고, 그 생명을 위해 아는 것, 사귐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이 요긴하게 가르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믿을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은 무엇인가 함입니다."
생명의 사귐을 가지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바르게 알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으로서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삶의 바른 길을 부지런히 가르치려고 하듯이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나님과 사귐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얻고 충만한 생명을 누리며 살 수 있는가를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모든 것을 안다. 이 아이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좋은 성질과 나쁜 성질, 말 소리 하나, 호흡의 숨결하나 까지도 알고 이 아이의 기분이 어떤지, 지금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지금 밥을 달라고 하는 것인지, 물을 달라고 하는 것인지, 똥을 싸겠다는 것인지, 새옷을 입혀달라는 것인지, 거기까지 같이 손잡고 가달라고 하는 것인지, 함께 놀자는 것인지를 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다. 일거수 일투족을 훤히 내다 보시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며 사랑으로 모든 필요한 것을 제공하시는 분이시다.
여기 칼이 있다. 강도의 눈에는 좋은 도구다. 요리사의 눈에는 좋은 도구이다. 군인의 눈에는 좋은 도구이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정말로 좋고 유익한 것이 될 수 있고, 아쉽게도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칼 자체가 문제라고 어떤 이는 말하기도 한다. 칼이 없었으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칼이 쓰여져야할 용도가 있고 칼이 없으면 그것을 할 수 없다.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칼을 사용해야할 그 용도를 폐기할 수는 없다. 대체물품도 결국 일종의 칼이 되는 것이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있다.
성경을 어떤 눈으로 볼 것인가?
어떤 눈으로 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알고 믿기 위해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고 믿기 위해서 보아야 한다.
뭐가 그리 복잡한가?
그냥 하나님은 하나님이야 그걸 믿으라고 하면 끝이지 않는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야 그걸 믿으라고 하면 끝나지 않는가?
아니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영생, 사귐,
나, 사람, 세상, 역사, 창조, 타락, 구속, 심판, 중생, 성화, 하나님의 나라
교육이 필요하다. 믿고 알고, 알고 믿고, 믿고 알아가면서 그 사귐 안에 거하는 자로서 생명을 누리고 즐기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전도서 12장 13절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호세아 6장 3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힘써 알아가야 할 일을 알아가자.
교육할 일을 힘써 하자. 자기교육의 방향과 내용이 여기에 걸려있음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어떻게 삼위일체 하나님과 사귐 안에서 살아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 길을 부지런히 알아가야 하고 그 안에서 오늘도 걸어가야 한다. 나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자녀교육, 손자녀 교육
그걸 이야기하자고 시작한 글이다.
[교실이 없는 시대가 온다]는 존 카우치의 소리를 듣는다.
인공지능의 막강한 위력이 점점 현실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서 사람이 만든 것이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아이러니를 겪는다.
내 앞에는 인쇄된지 20년이 훨씬 지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소책자가 놓여 있다. 이것을 사용해서 아이들이 어릴 때 교회와 함께 부지런히 가르치고 아이들과 함께 암송하곤 했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왜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절실한 질문에 대해 마치 누구라도 다 아는 것처럼 뒤로 넘기고, 삶의 당면한 과제인 날마다 먹을 양식을 어떻게 구할까에만 온 정신을 팔고 있는 세상을 산다.
생명이 무엇인가?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는가?
내일 죽어서 없어질 존재라면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최고의 선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생명이 무엇인지를 아주 멋들어지게 가르쳐준다.
야고보서 4장 14절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인간 실존의 정체를 정확하게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이다.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이...
인간의 인권을 주장하고, 최고선인 것처럼 항변하기도 하지만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것이 인간의 생명이다. 누가 그런 안개를 가치있다 하고 그것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받쳐서 지켜내려고 하겠는가?
사람의 생명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끄집어 내어 보이고 알게 해준다.
요한복음 17장 3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인간에게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이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임을 밝히 알게 해준다.
사람이 영원히 산다는 것은 그냥 안개가 영원히 존재하는 것과 같은 존재의 연속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격적인 존재로 각각의 독특한 인격을 발휘하면서 사는 것이다.
여기 요한복음 17장 3절이 말하는 바, '아는 것'은 그냥 백과사전적으로 지식을 소유하는 것, 또는 디지털 컴퓨터에 이진법의 기호로 저장되는 데이터가 아니다.
내가 누구를 안다는 것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친숙하게 잘 알고 그와 사귐을 갖는 것이다. 나는 내 아이를 안다. 아이와 함께 몸을 부딪치며 오랜 시간을 보내며 알고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은 아무리 해도 그 앎에 완전하지 못하고 사귐에 충만하지 못함이 많다.
하물며 사람이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온전하게 알고 삼위일체 하나님과 충만한 사귐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 줄 얼마나 알 수 있겠는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3문이 말하려는 것은 바로 이 생명이고, 그 생명을 위해 아는 것, 사귐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이 요긴하게 가르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믿을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은 무엇인가 함입니다."
생명의 사귐을 가지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바르게 알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으로서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삶의 바른 길을 부지런히 가르치려고 하듯이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나님과 사귐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얻고 충만한 생명을 누리며 살 수 있는가를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모든 것을 안다. 이 아이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좋은 성질과 나쁜 성질, 말 소리 하나, 호흡의 숨결하나 까지도 알고 이 아이의 기분이 어떤지, 지금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지금 밥을 달라고 하는 것인지, 물을 달라고 하는 것인지, 똥을 싸겠다는 것인지, 새옷을 입혀달라는 것인지, 거기까지 같이 손잡고 가달라고 하는 것인지, 함께 놀자는 것인지를 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다. 일거수 일투족을 훤히 내다 보시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며 사랑으로 모든 필요한 것을 제공하시는 분이시다.
여기 칼이 있다. 강도의 눈에는 좋은 도구다. 요리사의 눈에는 좋은 도구이다. 군인의 눈에는 좋은 도구이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정말로 좋고 유익한 것이 될 수 있고, 아쉽게도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칼 자체가 문제라고 어떤 이는 말하기도 한다. 칼이 없었으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칼이 쓰여져야할 용도가 있고 칼이 없으면 그것을 할 수 없다.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칼을 사용해야할 그 용도를 폐기할 수는 없다. 대체물품도 결국 일종의 칼이 되는 것이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있다.
성경을 어떤 눈으로 볼 것인가?
어떤 눈으로 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알고 믿기 위해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고 믿기 위해서 보아야 한다.
뭐가 그리 복잡한가?
그냥 하나님은 하나님이야 그걸 믿으라고 하면 끝이지 않는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야 그걸 믿으라고 하면 끝나지 않는가?
아니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영생, 사귐,
나, 사람, 세상, 역사, 창조, 타락, 구속, 심판, 중생, 성화, 하나님의 나라
교육이 필요하다. 믿고 알고, 알고 믿고, 믿고 알아가면서 그 사귐 안에 거하는 자로서 생명을 누리고 즐기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전도서 12장 13절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호세아 6장 3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힘써 알아가야 할 일을 알아가자.
교육할 일을 힘써 하자. 자기교육의 방향과 내용이 여기에 걸려있음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어떻게 삼위일체 하나님과 사귐 안에서 살아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 길을 부지런히 알아가야 하고 그 안에서 오늘도 걸어가야 한다. 나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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