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버지니아 공대 대학살로 여기저기 시끄럽다.
정말 참혹한 사실인만큼 다양한 이슈도 포함되어 있는 사건이다.
여기저기 말이 많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잠시 미국에 있는 내가 보기에는 미국보다 한국이 더 시끄럽다.

그가 한국인임이 알려지면서,
한국은 자신의 땅에 사건이 난 것처럼 폭발적인 소음을 쏟아내고 있다.
이건 소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왜 여기서 한국의 구조적인 사회 문제와 연관시키는 것인지,
왜 여기서 한국의 정치적 현안과 연관시키는 것인지,
왜 여기서 한미 간의 정치 경제적 관계를 연관시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건의 핵심은 그가 한국인임이 아니라 미국 내 총기 소유 문화에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민족정체성은 동일한 피가 흐른다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민족정체성은 그 사회와의 교류를 통한 사회화를 통해 획득된다.
만약 그가 인종학적 분류로 한국인이라 할지라도,
이 땅 이 나라에서 자라나 그 문화를 섭취하여,
마침내 한국 사람 같다고 말할 수 있지 않다면 그는 한국 사람이 아니다.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이다. (베네딕트 앤더슨)
미국에 초등학생 때부터 유학가서
미국식 교육을 받고 미국 문화에 물들어 자라온 그에게,
그가 이렇게 죽이고 죽고 난 다음에
우리는 그에게 한국사람임을, 한국사람됨을 강요해야 할까.

여기 언론이나 미국 친구들이나 누구도 이 사건을 그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이 미국 총기 문화의 또다른 사생아 식의 접근이 아니라
한국인 조승희의 살인사건으로 접근한다.
전 한국인이 나서서 한국인이 미국 사람 죽여서 죄송합니다
라고 사죄라도 하고 다녀야 하나.
우리 정부가 나서서 한국 사람 교육 잘못 시켜서 죄송합니다
라고 사죄성명이라고 발표해야 되나.
아니, 죽은 33명의 사람 중에 진짜 미국 사람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몇 명일까.

미국이 강력한 이유는 미국 사회의 다양성과 다양성의 존중에 있다.
수많은 인종들과 민족성이 다양성을 존중 받으며 공존하고 있다.
서로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한다.
내가 있는 곳은 대학 사회라서 그런지 아직 그런 경우는 보지 못했지만,
당연히 인종차별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공적질서를 무너트리지 않는다면,
그들의 생각 또한 차별없이 용인된다.
이 또한 미국이 가지는 다양한 사회의 스펙트럼 중 일부이다.
만약 그들이 공공질서를 어기고 폐를 끼친다면 가차 없이 법의 징벌을 받는다.
미국은 공권력이 한국과는 달리 무척이나 엄하고 강한 사회이다.

반면에 한국은 나와 타인의 다름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민족은 문화적 경계 중심의 공동체가 아니라, 순혈주의식 공동체이다.
피가 섞이지 않으면, 외양이 한국 사람 같지 않다면 그는 한국 사람이 아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 사람처럼 행동하고 한국 문화에 길들여진,
인종학적으로 동남아인과 유럽인들은 우리 사회에서 한국 사람이 될 수 없다.
반면에 몇 세대에 걸쳐 자신이 한국인의 피를 가지고 있다고
단순히 인식만 하는 교포 3세들의,
업적 소식에 매스컴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광분을 한다.

지금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천박한 순혈주의식 민족주의의 단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사고를 버리고
보다 세계화된 넓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한국인 조승희의 살인사건이 아닌,
미국 총기 문화와 폭력성으로 그 문제의 핵심을 바로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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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과제하고 왔더니 메인에 떡하니 올라고 있네요.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만 일일이 답변을 드리는 것은 힘들 것 같고 많은 분들이 지적하신 천박한 민족주의에 대해서 제 생각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참으로 정의하기가 모호한데요, 대체로 민족이라는 개념의 형성은 근대국가의 형성 이후라고 보고 있습니다. 근대 기술의 확보로 자국의 경계에 일어나는 일이 일반 민중들까지 광범위하게 전달될 수 있고 아울러 국가의 경계가 뚜렷해 지고 주권 개념이 확실해 지면서 동일한 국가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민족이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즉, 민족은 만들어진 개념이며 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도 대몽항쟁이나 임진왜란 시 의군들은 우리 한민족이 다른 민족에 침탈 당하는 것이 싫어서 싸웠다기 보다는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거 같습니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민족이 중심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생활이 중심이었고 사대부들에게는 왕과 사직이 중심이었겠지요. 우리 한국도 근대국가화 되면서 국가 정체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게 되었고 따라서 국가 주도의 단일한 역사관 교육을 통한 민족, 국가 정체성 만들기가 시도되었다고 봅니다. 김구 선생님이 말하신 민족관과 한일 강점기 때의 치열했던 민족 운동 또한 세계가 근대 국가 시대로 접어 들었고 우리도 그러한 민족의 개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이전의 사료들에서 한민족이라는 명확한 민족적인 관념을 찾아보기 힘든 건 사실이죠.

그렇기에 민족과 주권 국가가 불가분의 관계라면 적어도 민족주의를 부정하거나 그 자체를 천박하다고 매도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여기 미국에 있으면서도 항상 한국을 생각하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제가 한민족이라는 터울에 있기 때문이겠죠. 제가 천박하다고 말씀 드린 것은 이러한 민족주의가 인종학적 구분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희 나라의 경우에는 단일 민족 국가라서 특히 그 정도가 지나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민족이라는 개념을 우리는 하나의 동일 혈연집단이라고 인식하게된 것이겠죠. 언어가 사고의 한계를 결정한다는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구에서 전달되어 온 민족주의라는 관념 그 자체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국가 정체성 혹은 국가 중심의 문화 정체성이지 핏줄정체성을 의미하는 바가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동일한 피가 섞여 있다고 해서 한국에 대해 알지 못하고 한번도 방문하지 않는 이들에게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칭호는 선사하곤 합니다. 우리는 단지 피가 섞여 있다고 해서 조성희 씨를 마치 한국의 대표인양, 우리 민족을 대표해서 미국에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며 홀로 안절부절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좋은 것만 한국인, 나쁜 것은 한국인이 아니라 식의 논리가 아닙니다. 그걸 떠나서 이러한 혈연집단 중심의 획일적인 선긋기 식의 순혈주의 민족주의를 저는 천박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빠른 속도로 정보와 인적, 지적 자본의 흐름이 가속화 되고, 거대 미디어를 통한 단일한 문화 형성의 가능성이 커지면서 각 국가의 정체성이나 민족의 정체성이 희미해져 가고 있는 이 시점에 오히려 우리 것을 찾자라는 가장 한국 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식의 민족주의의 모습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건설적인 모습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사건을 대하는 우리에게 가장 한국적인 것은 핏줄인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는 천박한 민족주의 입니다. 정말로 한국 적인 것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와 핏줄이 다른 사람도, 한국 땅에서 한국 사람으로 대접받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PS - 몇몇 분들이 마치 천리안이라도 가지신 양 언론에서 중국계라고 할 때는 제가 중국계 욕하더니 이제 한국계라고 밝혀지니 한국 사람 아니다라고 말하는거냐며 비난 하시는군요. 전 맨 처음 뉴스 접하고 수업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니 한국계라고 밝혀진 바라서 중국계라는 추측기사 보지도 못했는데요.^^ 그리고 중국계든, 한국계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않습니까. 핏줄 구분을 통한 책임 다툼은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PS2 - 한국인의 피를 가지고 있지만 이미 미국인으로 낙인 찍힌 유승준의 경우와 지금 사건을 같이 생각해 보시면 우리 사회의 위선적이고 천박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민족주의에 대해 더 잘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자유토론방
글쓴이 : 김석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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