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20(금) 마 6:9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Our father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이름은 누구의 이름이며, 누구에게 그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까?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Now this is eternal life; that they may know you, the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you have sent.

 

1.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기도이다.

2. 기도는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누구이신가를 잘 알아야 바르게 드릴 수 있다.

3.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다. 우상에게 기도하는 것은 헛된 것이다.

  마음에 탐심을 품고 드리는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 헛된 기도이다.

   탐심이 우상숭배이기 때문에 그렇다.

 

4.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누구신가?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통치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시고 모세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분이시다.

다윗에게 영원한 나라와 보좌를 언약하시어 망하지 않는 나라를 세워주시는 분이시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언약을 다 성취하시고 영원한 나라를 주신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자들을 그 나라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 영원한 나라를 이 잠깐 뿐인 현세의 세상에서 교회로 불러 모으신 자들에게 주시는 분이시다.

 

5. 마침내 언약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보내시사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창조의 세계를 재창조하시고

새로운 인류로 하여금 영원히 그 안에서 살게 하실 분이시다.

 

6.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7. 여기서 이름은 바로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다.

이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와 성격과 그 사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름이 거룩히 여겨진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피조물과 구별되시는 참 하나님이시오, 온 세상의 창조주시오,

창조한 만물을 홀로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심을 인정받으시는 것이다.

 

8. 사람이 그런 사실을 인정하면 그렇게 되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인정과 불인정은 사람 그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참되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섬기고 사는 사람, 즉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게 하는 사람은 참된 삶을 산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순종치 않고 오히려 거역하고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은 헛된 삶을 산다.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냥 헛되게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사람이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이 세상과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대로 움직여가며,

마침내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경영하신 뜻이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산다면,

어떻게 하루라도 바르게 살 수가 있겠는가? 그렇지 못하다.

 

9. 예수님께서 이 기도로 가르치시는 것은 이렇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고 하나님께 진실된 기도를 드릴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되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사실을 믿은 사람들.

즉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구별되게 영광이 돌려지기를 기도하라는 것이다.

즉 믿는 우리에게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바르게 알려지고 선포되고 높이 찬송되기를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 되는 것은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서만 그렇게 되어질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 들 안에서 높이 되어지는 하나님의 이름은 그 일로 인해 바로 하늘의 천사들에게서 그 영광의 찬송이 들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온 세상 만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던 데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찬송하게 될 것이다.


또한 심판을 받는 불신의 세상조차도 그들이 입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기를 소원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엄위와 사랑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온 천지만물에게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짐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위해서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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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신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롬 8:18-25)


I consider that our present sufferings are not worth comparing with the glory that will be revealed in us.

The creation waits in eager expectation for the sons of God to be revealed.

For the creation was subjected to frustration, not by its own choice,

but by the will of the one who subjected it,

in hope that the creation itself will be liberated from its bondage to decay and brought into the glorious freedom of the children of God.

We know that the whole creation has been groaning as in the pains of childbirth right up to the present time.

Not only so, but we ourselves, who have the firstfruits of the Spirit, groan

inwardly as we wait eagerly for our adoption as sons, the redemption of our bodies.

For in this hope we were saved. But hope that is seen is no hope at all.

Who hopes for what he already has? But if we hope for what we do not yet have, we wait for it patien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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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사람은 현세적이다. 이 세상밖에 알지 못한다. 누가 내세를 알고 확신할 수 있는가?

신앙은 내세를 바라보게 한다.

현세적인 신앙, 이 세상에서 복받고 잘 되기를 바라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니다.

그것은 우상 숭배이다. 바로 내가 그런 자이다. 그런 자였다.

그렇게 내세가 믿어지지 않았다. 신앙되지 못했다.

어떻게 내세가 믿어지겠는가? 오는 세상(내세), 하나님 나라를 누가 보고 믿을 수 있겠는가?

현세의 피조물들의 이 고통,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신음하는 이 세상의 까닭이 무엇인가를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의 의미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어떤 것이 행복되고 바른 삶인가?

소망이 있는가?

이 절절한 어둠의 세상에 과연 소망이 있는가?

빛이 있는가? 나에게 빛이 있는가?

 

이제 그렇다. 빛이 있으라 하신 그 분이

나에게 빛을 주시고, 어둠에서 건져주셨다.

이 현세의 어둠에 빛을 비추어주시고

내세를 믿지 못하고 바라볼 수 없는 자에게

오는 세상을 알게 하여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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