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언약과 자녀교육
이제 키운다면 (17)
풀꽃마냥
2020. 9. 12. 05:15
이제 키운다면 (17) / 최대규
동기부여가 학습에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듣는다.
이 말이 사람의 발달단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영어 학습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길게 하소연처럼 소개했는데 프라이버시를 공개하여 부끄럽기도 하다. 그리고 유독 한 가지 주제나 아이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교육 전체를 편향되게 인식하는 인지편향을 조장하고 그로 말미암은 확증편향을 더 고착화 할 수 있으니 더욱 조심해서 생각할 일이다.
아직도 씨름한다. 사실 무엇 하나 삶에서 고착된 것은 없다. 고착되었다 생각하는 순간 거기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는 하지만 그것도 또다른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만큼 사람은 겸손하게 자신이 열려있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마지막 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녀교육에 미쳐 영어에 대한 인지편향과 확증편향이 영향을 미쳤을까?
네 아이를 받아 키우면서 비록 초등교사였지만 대체로는 아내가 교육을 수행했다. 학습지, 피아노 학원, 유치원, 생활 속의 거의 대부분을 아내가 계획하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물론 아내와 모든 일에 의논하여 부부의 공동결정에 의해서 큰틀이 결정되고 시행되기는 한다. 그러나 결국 디테일한 내용들은 아내의 손에서 좌우된다.
영어교육도 나의 경험과 생각이 있지만 대부분의 집안 생활을 주도하는 아내에 의해서 움직여지게 되었다. 아주 어릴 때 영어 알파벳 그림판을 집벽에 붙이고 때마다 장난처럼 주고 받는 일부터 시작해서 영어 관련 보드북이나 그림책을 가지고 읽어주고 노는 일, 조금나아가 영어 애니메이션을 틀어 주는 일, 본격적으로 당시 유행하던 영어 학습지 프로그램 윤선생 영어를 이용한 매일 학습, 초등 학교 때 영화를 이용한 영어학습학원 다니기 등 조기영어 교육을 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거의 모든 한국 부모들이 기본적으로 하던 일이었다. 입소문을 타고 뭐가 좋다더라 하면 귀가 솔깃해서 따라가곤 했다. 아이들은 이런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부모의 선택에 따라 일방적으로 교육에 노출된다. 아이의 주관적 성향이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단 아이가 강하게 거부 반응을 지속적으로 보이거나 영어 성적이 별로 향상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프로그램이 바뀔 수는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와의 보이지 않는 씨름은 아이의 인격형성과 학습 습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참 조심할 일인데 아이의 자기주도성을 살려주는 교육을 하기 위해 주의할 요소들이다. 사소한 것 같지만 작은 것들이 모여 점점 큰 물줄기를 만들게 된다.
자녀교육은 부모나 교사가 주도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주도적으로 타고난 재능, 관심사, 열정을 찾아내도록 돕는 일이어야 한다. 말은 쉽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인가? 지난 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자기주도성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자기 적성과 꿈에 따라 대학에 입학하거나 직장생활을 시작하기전까지를 기준으로 0%에서 100%까지 점차 증가해 가야 한다. 물론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어떤 순간이나 어떤 사건, 또는 어느 주제에 대해서는 100% 아이에게 주도권과 선택권을 주어서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런 일이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는 부모나 주변의 교육환경의 도움과 교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에게 있는 것을 발현시키기까지 부모도 함께 지난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것은 일반론이다. 결국 개인으로 가면 별별 일이 다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일반론을 가지고 아이에게 강요하는 일은 금물이다.
모두가 이러하니까 너도 이러해야 한다는 것은 아이의 개별적 독특성을 죽이는 일이다.
물론 일반론을 참고로 하고 그것을 아이와 계속 대화를 통해서 아이가 스스로 받아들이도록 부모는 최대한 인내하며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거부하는 일은 어쩔 수 없다. 그런 일에 매를 가지고 다스리는 일은 낭패를 보게 된다. 매로 다스리기 시작하면 결국 그런 인격이 되고 만다. 부모가 먼저 그런 폭압자가 되고 말고, 거기에 따라 아이도 그런 성향을 은연중에 가지게 된다.
성경의 하나님은 징계하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세계 어느 민족의 역사보다 처절하다. 그들이 포로로 살았던 시절이 어떠한가? 최초 민족으로 형성되던 애굽 시절 400년은 물론이고,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북이스라엘이 종으로 끌려가게 된 것, 그리고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하여 바벨론에서 70년간 종노릇한 일, 그리고 회복되지만 결국 로마의 지배하에서 디아스포라가 되고 만 일, 그들의 이러한 처참한 역사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하나님은 징벌하신다. 물론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질투하시는 분이시다. 그들이 우상에게 종노릇하게 되면 그들을 벌하여 그것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분이시다.
자녀교육은 어떠한가? 아이들이 우상에게 끌려가는데 그냥 아이들이 자기주도적으로 자라야 한다고 해서 내버려두고 너의 자유라고 할 수 없다. 징계를 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에서 사실은 부모가 먼저 우상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다. 부모가 아이를 교육할 때 왜 분노하고 기뻐하는가? 왜 성적과 대학 때문에 그렇게 안달을 하는가? 이 물신주의의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래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한 자리를 차지하게 하려고 애쓰는 것은 아닌가?
그것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아이를 닥달하지는 않는가?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속에 깊은 곳에 우상을 두고 섬기는 일이 많다.
그러면서 아이를 닥달하고 매로 징계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를 닮은 게 아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아이가 정말 그릇된 방향으로 갈 때,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하는 일이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그리고 신사적으로 해야한다. 아이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 아이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스스로 자기 종아리를 내놓을 때 징계는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면 이미 징계의 목적은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징계의 증표로 따끔한 회초리가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부모인 내가 화를 자제하지 못하고 나의 화에 이끌려 매를 들고 체벌을 한 경우가 많았다. 정말 아이에게 미안한 일이다.
아이의 자기주도성에서 동기부여의 일들이 결국 교육의 목표와 연관되어 있고, 그것이 총체적으로 인격적으로 작용되어야 한다.
영어 교육을 왜 하는가? 왜 영어를 잘 해야 하는가? 세계화 시대에 세계에서 뭔가 잘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일이라서 그리해야 하는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좀더 깊은 속에서 이 일을 생각해야 한다. 자녀교육을 왜 하는가? 이 글로벌화한 세상 속에서 자기 실현을 멋지게 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교육을 하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거시적인 섭리 속에서 그 구원의 일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위해서 해야 한다. 그런 목표 하에서 미시적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부분을 담당한 자로서 이 영광스러운 과업의 한 부분을 책임있게 감당할 수 있기 위해서 자기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와 환경을 다 사용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해야 한다.
나는 지금도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왜 그러는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소통하고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적 결과물들을 나누고 우리나라에 소개하며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며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일에 사용되게 하기 위함이다.
자녀교육, 자녀들에게 어떤 부분을 배우고 잘 하라고 격려하는 일들은 이런 거시적 차원에서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환경 속에서 부지런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아이를 닥달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호기심과 재능을 자꾸 열어 주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각 아이마다 다 다르다. 그러니 부모는 자기의 경험 세계 안에만 갇혀서 자기 고집으로 아이를 교육해서는 안 된다. 부모도 자기 주도성을 가지고 아이와 함께 자라가고 자기 교육을 이루어가는 존재로서 부지런히 배우고 흡입하면서 이 시대에 뒤지지 않게 흐름을 따라 이해하고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시대의 어두움을 비추어 밝고 맑은 물결이 흐를 수 있도록 기여하는 존재로 점점 자라가면서 그렇게 자기 자녀들을 가르치고 함께 배워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지으신 것들이 선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주시는 모든 은사와 은혜를 남김없이 다 발현하도록 해야 한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을 바르게 알고 그것을 지향하는 삶을 살며 자녀들과 함께 그런 삶을 이루어가도록 자기도 부지런히 배우고 자라가고 아이와 함께 가르치며 배우고 자라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종교개혁 시대에 믿음의 선배들은 그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삶의 목적을 깊이 생각하며 그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자녀교육의 지표와 삶의 지향으로 삼고 그렇게 살아갔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1문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답 :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기는 것입니다.
삶이 그러하고, 삶에서 중요한 부분인 교육도 그리하다. 삶의 목적이 그리하듯이 교육도 제일 목표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기는 것이다.
교육의 동기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기기 위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즐길 수 있는가? 바로 자녀교육을 통해 그리고 자기교육을 통해서 그리할 수 있고 그리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기는 교육을 할 수 있는가?
동기부여가 학습에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듣는다.
이 말이 사람의 발달단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영어 학습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길게 하소연처럼 소개했는데 프라이버시를 공개하여 부끄럽기도 하다. 그리고 유독 한 가지 주제나 아이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교육 전체를 편향되게 인식하는 인지편향을 조장하고 그로 말미암은 확증편향을 더 고착화 할 수 있으니 더욱 조심해서 생각할 일이다.
아직도 씨름한다. 사실 무엇 하나 삶에서 고착된 것은 없다. 고착되었다 생각하는 순간 거기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는 하지만 그것도 또다른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만큼 사람은 겸손하게 자신이 열려있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마지막 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녀교육에 미쳐 영어에 대한 인지편향과 확증편향이 영향을 미쳤을까?
네 아이를 받아 키우면서 비록 초등교사였지만 대체로는 아내가 교육을 수행했다. 학습지, 피아노 학원, 유치원, 생활 속의 거의 대부분을 아내가 계획하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물론 아내와 모든 일에 의논하여 부부의 공동결정에 의해서 큰틀이 결정되고 시행되기는 한다. 그러나 결국 디테일한 내용들은 아내의 손에서 좌우된다.
영어교육도 나의 경험과 생각이 있지만 대부분의 집안 생활을 주도하는 아내에 의해서 움직여지게 되었다. 아주 어릴 때 영어 알파벳 그림판을 집벽에 붙이고 때마다 장난처럼 주고 받는 일부터 시작해서 영어 관련 보드북이나 그림책을 가지고 읽어주고 노는 일, 조금나아가 영어 애니메이션을 틀어 주는 일, 본격적으로 당시 유행하던 영어 학습지 프로그램 윤선생 영어를 이용한 매일 학습, 초등 학교 때 영화를 이용한 영어학습학원 다니기 등 조기영어 교육을 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거의 모든 한국 부모들이 기본적으로 하던 일이었다. 입소문을 타고 뭐가 좋다더라 하면 귀가 솔깃해서 따라가곤 했다. 아이들은 이런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부모의 선택에 따라 일방적으로 교육에 노출된다. 아이의 주관적 성향이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단 아이가 강하게 거부 반응을 지속적으로 보이거나 영어 성적이 별로 향상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프로그램이 바뀔 수는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와의 보이지 않는 씨름은 아이의 인격형성과 학습 습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참 조심할 일인데 아이의 자기주도성을 살려주는 교육을 하기 위해 주의할 요소들이다. 사소한 것 같지만 작은 것들이 모여 점점 큰 물줄기를 만들게 된다.
자녀교육은 부모나 교사가 주도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주도적으로 타고난 재능, 관심사, 열정을 찾아내도록 돕는 일이어야 한다. 말은 쉽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인가? 지난 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자기주도성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자기 적성과 꿈에 따라 대학에 입학하거나 직장생활을 시작하기전까지를 기준으로 0%에서 100%까지 점차 증가해 가야 한다. 물론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어떤 순간이나 어떤 사건, 또는 어느 주제에 대해서는 100% 아이에게 주도권과 선택권을 주어서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런 일이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는 부모나 주변의 교육환경의 도움과 교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에게 있는 것을 발현시키기까지 부모도 함께 지난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것은 일반론이다. 결국 개인으로 가면 별별 일이 다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일반론을 가지고 아이에게 강요하는 일은 금물이다.
모두가 이러하니까 너도 이러해야 한다는 것은 아이의 개별적 독특성을 죽이는 일이다.
물론 일반론을 참고로 하고 그것을 아이와 계속 대화를 통해서 아이가 스스로 받아들이도록 부모는 최대한 인내하며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거부하는 일은 어쩔 수 없다. 그런 일에 매를 가지고 다스리는 일은 낭패를 보게 된다. 매로 다스리기 시작하면 결국 그런 인격이 되고 만다. 부모가 먼저 그런 폭압자가 되고 말고, 거기에 따라 아이도 그런 성향을 은연중에 가지게 된다.
성경의 하나님은 징계하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세계 어느 민족의 역사보다 처절하다. 그들이 포로로 살았던 시절이 어떠한가? 최초 민족으로 형성되던 애굽 시절 400년은 물론이고,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북이스라엘이 종으로 끌려가게 된 것, 그리고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하여 바벨론에서 70년간 종노릇한 일, 그리고 회복되지만 결국 로마의 지배하에서 디아스포라가 되고 만 일, 그들의 이러한 처참한 역사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하나님은 징벌하신다. 물론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질투하시는 분이시다. 그들이 우상에게 종노릇하게 되면 그들을 벌하여 그것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분이시다.
자녀교육은 어떠한가? 아이들이 우상에게 끌려가는데 그냥 아이들이 자기주도적으로 자라야 한다고 해서 내버려두고 너의 자유라고 할 수 없다. 징계를 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에서 사실은 부모가 먼저 우상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다. 부모가 아이를 교육할 때 왜 분노하고 기뻐하는가? 왜 성적과 대학 때문에 그렇게 안달을 하는가? 이 물신주의의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래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한 자리를 차지하게 하려고 애쓰는 것은 아닌가?
그것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아이를 닥달하지는 않는가?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속에 깊은 곳에 우상을 두고 섬기는 일이 많다.
그러면서 아이를 닥달하고 매로 징계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를 닮은 게 아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아이가 정말 그릇된 방향으로 갈 때,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하는 일이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그리고 신사적으로 해야한다. 아이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 아이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스스로 자기 종아리를 내놓을 때 징계는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면 이미 징계의 목적은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징계의 증표로 따끔한 회초리가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부모인 내가 화를 자제하지 못하고 나의 화에 이끌려 매를 들고 체벌을 한 경우가 많았다. 정말 아이에게 미안한 일이다.
아이의 자기주도성에서 동기부여의 일들이 결국 교육의 목표와 연관되어 있고, 그것이 총체적으로 인격적으로 작용되어야 한다.
영어 교육을 왜 하는가? 왜 영어를 잘 해야 하는가? 세계화 시대에 세계에서 뭔가 잘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일이라서 그리해야 하는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좀더 깊은 속에서 이 일을 생각해야 한다. 자녀교육을 왜 하는가? 이 글로벌화한 세상 속에서 자기 실현을 멋지게 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교육을 하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거시적인 섭리 속에서 그 구원의 일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위해서 해야 한다. 그런 목표 하에서 미시적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부분을 담당한 자로서 이 영광스러운 과업의 한 부분을 책임있게 감당할 수 있기 위해서 자기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와 환경을 다 사용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해야 한다.
나는 지금도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왜 그러는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소통하고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적 결과물들을 나누고 우리나라에 소개하며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며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일에 사용되게 하기 위함이다.
자녀교육, 자녀들에게 어떤 부분을 배우고 잘 하라고 격려하는 일들은 이런 거시적 차원에서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환경 속에서 부지런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아이를 닥달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호기심과 재능을 자꾸 열어 주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각 아이마다 다 다르다. 그러니 부모는 자기의 경험 세계 안에만 갇혀서 자기 고집으로 아이를 교육해서는 안 된다. 부모도 자기 주도성을 가지고 아이와 함께 자라가고 자기 교육을 이루어가는 존재로서 부지런히 배우고 흡입하면서 이 시대에 뒤지지 않게 흐름을 따라 이해하고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시대의 어두움을 비추어 밝고 맑은 물결이 흐를 수 있도록 기여하는 존재로 점점 자라가면서 그렇게 자기 자녀들을 가르치고 함께 배워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지으신 것들이 선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주시는 모든 은사와 은혜를 남김없이 다 발현하도록 해야 한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을 바르게 알고 그것을 지향하는 삶을 살며 자녀들과 함께 그런 삶을 이루어가도록 자기도 부지런히 배우고 자라가고 아이와 함께 가르치며 배우고 자라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종교개혁 시대에 믿음의 선배들은 그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삶의 목적을 깊이 생각하며 그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자녀교육의 지표와 삶의 지향으로 삼고 그렇게 살아갔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1문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답 :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기는 것입니다.
삶이 그러하고, 삶에서 중요한 부분인 교육도 그리하다. 삶의 목적이 그리하듯이 교육도 제일 목표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기는 것이다.
교육의 동기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기기 위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즐길 수 있는가? 바로 자녀교육을 통해 그리고 자기교육을 통해서 그리할 수 있고 그리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기는 교육을 할 수 있는가?